'시간외근무' 대신 '시간외봉사'…일본, 과로사방지법 시행 1년반 변한게 없다
일본에서 유행하는 카로시(과로사) 게임 /유튜브
과로사로 악명 높은 일본에서 과로사방지법이 시행된 지 1년반이 지났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일 전했다. 장시간 근로를 당연시하는 직장문화 자체를 바꾸는 방법 외에 달리 해법은 없다는 진단이다. 일본과 닮은꼴인 한국에도 반면교사가 될 만한 내용이다.
일본에는 '카로시'라는 이름의 게임이 있다. 과로에 시달리는 회사원 캐릭터가 어떻게든 자살하려는 게임이다. 옥스퍼드사전에 '과로사'라는 의미의 일본어인 '카로시'가 등재될 정도로 과로사가 많은 일본에서는 인기게임으로 알려져 있다. WP의 보도를 보면 일본에서는 이 게임이 현실화되고 있는 중이다.
도쿄의 아파트 빌딩 관리회사에서 일하던 세리자와 키요타카는 지난해 7월 자신의 차에 조개탄을 피워 자살했다. 자살 당시 그의 나이는 34세로 한창 일할 나이였다. 문제는 너무나 일에 몰두했다는 점이다. 그는 죽기 직전 일주일동안 90시간을 일했다고 한다. 일본의 법정 근로시간이 일주일에 40시간이니 두배 이상을 일한 셈이다. 그가 가끔 부모님 집에 들러 잠을 잘 때마다 그의 어머니가 심장이 멈추지 않았는지 확인해야 할 정도로 그는 과로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는 빌딩 3곳의 책임자로 너무 힘들어 물러나려고 했지만 다른 직원이 힘들게 될까봐 퇴사하지 못하다 결국 자살을 택했다는 것. 그의 차가 발견된 곳은 어릴 적 가족들과 즐겨 가던 캠핑장 근처였다. 가족과의 시간을 그리다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야기다.
일본의 시간외근무 문화는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제2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서기 전 상대적으로 급여가 높지 않던 시기라 근로자들이 소득을 높이려고 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는 1980년대 일본의 번영기에도 유지됐다. 1990년대말 '버블 붕괴'로 구조조정이 시작되자 이번에는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보장받기 위해서 시간외근무를 자청했다. 이같은 문화가 계속 이어져 현재는 비정규직으로까지 확산됐다. 일본 노동후생성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 끝난 2015년 회계연도에 과로사 청구 건수가 역대 최대인 2310건에 달할 정도로 과로사 문제는 심각한 지경이다.
결국 일본 정부는 2014년말 수십년간 사회문제가 돼 온 과로사 문제 해결에 착수했다. 이른바 과로사방지법의 제정이다. 최근 몇년간 전체의 8~9%에 이른 주당 60시간 근로자의 수를 2020년까지 5% 수준까지 낮춘다는 게 목표였지만 시행 1년반이 지나도록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WP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법 제정은 주변부에만 충격을 줄 뿐 근본적인 해법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근로시간 단축보다는 임금인상이 우선관심사인 일본의 노조, 그리고 일본 특유의 평생직장 선호 문화가 뿌리 깊은 시간외근무 문화와 결합하면서 법 제정만으로는 중과부적이 됐다는 것이다.
더구나 법안에는 법을 위반한 회사에 대한 처벌조항도 없다. 한술 더 떠 위법이라는 딱지를 피하기 위해 일본에서는 시간외근무라는 말 대신 '시간외봉사'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일본에서는 '봉사'란 곧 '무료'라는 의미다. 근로자부터 업무에서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 일을 마치지 못하면 '시간외봉사'라는 이름으로 무임금 추가근로를 자청하는 게 일상화돼 있다. 12시간 근로에도 눈 하나 깜짝 안하는 게 일본의 직장문화라고 전해진다.
간사이대학의 모리오카 코지 교수는 WP에 "장시간 근로는 일본내 만악의 근본이지만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불평할 시간조차 없다"며 "일본의 직장문화 전체를 뜯어고치지 않는 한 과로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