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전직 대표이사는 고달프다. 재임기간 경영실적이 좋지 않을 경우 회사에 손해가 된 모든 판단에 대해 '배임'죄가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 손해액이 커지면 '특정경제범죄법'이 적용돼 처벌 수위는 높아만 진다.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 전직 대표는 "경영실패는 곧 감옥이라는 마음으로 살았었다"며 "불확실한 신사업 등은 생각하기도 힘들다. 사업 실적이 좋지 않다면 나는 회사를 배신한 사람이되기 때문"이라고 하소연 했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유모씨는 최근 횡령죄로 고소돼 변호사를 찾았다. 자금 부족으로 인해 자제값을 제때 줄 수 없을때 유씨는 종종 자신의 돈으로 이를 대납했다. 그러던 중 회사의 공금을 개인적으로 사용한 후 채워넣은 방식으로 공금에 손을 댔다. 아들의 학원비가 급하게 필요해 무심코 공금으로 결제한 유씨는 결국 횡령죄로 고소당했다.
최근 법조계에서 '배임·횡령'죄와 '특정범죄 가중처벌법'(특가법)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배임죄의 해석이 과하다는 입장과 현행법으로 처벌이 가능한 죄임에도 여론에 의해 특가법 과하게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 없는 '특가법'…여론 따라 오락가락
검찰이 바쁜 한해를 보내고 있다. 롯데비자금,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법조비리, 넥슨 창립자 김정주 NXC 회장 횡령 의혹, 대우조선해양 수사까지 이례적으로 다수의 기업관련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이는 주로 기업의 오너들이 연관된 사건이다.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혐의는 '배임'과 '횡령'등이다. 지난해 대법원으로부터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은 이재현 CJ그룹의 죄명도 배임·횡령·조세포탈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같은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았다.
특히 재벌을 겨냥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정경제범죄법)으로 인해 불안의 수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경제질서를 확립하고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목적으로 제정된 이 법에 대해 법조계는 찬반으로 나뉘고 있다. 일부 법조계 인사는 "특가법은 현행 형법으로도 충분히 처벌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국민 여론에 부응하기 위해 제정한 법"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이나 유럽 등의 선진국에서는 특가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판사의 재량 또는 배심원의 결정에 따라 충분히 처벌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법이 제대로 서지 않았기 때문에 매번 여론이 일 때마다 특별법을 제정한다"며 "유독 국내에 특별법이 많은 이유다. 현행법으로 충분히 처벌을 할 수 있음에도 국민에게 정부의 역할을 각인시키기 위한 절차"라고 설명했다.
기업 오너들에게 단골로 적용되는 '배임'죄에 대한 해석 기준도 문제로 떠올랐다. 배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사실상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경영인의 의사결정과 경영활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배임죄의 해석을 최대한 축소했다. 반면 국내는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것만으로도 배임으로 해석될 때가 있다.
법률사무소 담소의 박문택 대표변호사는 "횡령은 그 행위가 명백한 것에 비해 배임은 경영상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해외에서는 배임죄를 처벌하는 사례가 드물다"며 "기업의 경영진은 자유롭게 사고하고 판단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판단 실수로 경영실패를 하면 잡혀 들어가게 된다"고 말했다.
특정경제범죄법의 '배임, 횡령'죄에 따르면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일 경우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진다. 형법 355조의 5년 이하,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비해 처벌의 수위가 높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특가법은 최대처벌을 높인 것이 아닌 최소처벌를 높인 것"이라며 "재벌에 대한 처벌이 미미하다는 여론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재벌만을 위한 법…신입사원도 주의해야
배임·횡령은 기업 오너들만 적용되지 않는다. 회사의 최고 결재권자가 아닌 이상 배임 혐의가 적용되는 사례는 드물지만 횡령에 대해서는 신입사원도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액수에 따라서는 특정경제범죄법이 적용돼 강도 높은 처벌을 받게 된다.
대기업의 경우 공금과 개인돈이 명백하게 구분되기 때문에 공금을 관리하거나 집행하는 부서가 아닌 이상 횡령혐의에 연류 되는 경우는 적다. 반면 규모가 작아 업무도중 개인돈이 쉽게 섞이는 중소기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횡령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공과 사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아 발생하는 일이다.
은행권이나 대기업의 공금 관리부서에서는 자신의 의지로 돈이 움직이기 때문에 본인 소유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은행의 경우 돈은 계속 들어오지만 개인이 횡령한 돈은 표가 잘 나지 않아 횡령 범죄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박문택 변호사는 "관리와 소유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돈이 아닌 타인의 돈을 관리한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며 "아무리 급한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돈으로 처리하거나 반대로 공금으로 개인일을 처리하면 안 된다. 금방 채워 넣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한번 손을 대면 계속해서 손대게 된다. 실제 횡령혐의로 고소된 사람들은 횡령한 돈을 비축해 두지 않고 다 써버린 경우가 많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