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빌릴 곳이 마땅찮은 가계와 기업들이 보험사로 몰리고 있다. 시중은행보다 비교적 문턱이 낮은 보험사를 통한 대출수요는 지난 1년새 급증했다. 1200조원이 넘는 가계 부채는 물론 하반기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기업 수익성 지연으로 보험사의 부실대출 규모가 커질 경우 훗날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단 지적이 제기된다.
21일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국내 생명보험사의 대출채권 잔액은 107조1735조원으로, 전년 동기 98조7779억원 대비 8조3956억원(8.5%) 급증했다. 대출채권은 보험약관대출, 부동산 담보대출, 신용대출 등을 합친 금액을 의미한다.
◆보험약관대출 잔액 가장 커
올 들어 월별 증가폭도 눈에 띄게 늘었다. 생보사 대출채권은 지난 1월 1282억원, 2월 1961억원 증가했다. 이어 3월에는 무려 7268억원 늘며, 전달과 비교해 4배가량 급증했다.
항목별로는 부동산 담보대출 잔액이 지난해 3월 말 25조4346억원에서 올 3월 말 29조5654억원으로, 4조1308억원(16.2%) 확대됐다. 같은 기간 신용대출 잔액은 22조9767억원에서 24조4205억원으로 1조4438억원(6.3%) 늘었으며, 약관대출 잔액은 39조8900억원에서 40조7284억원으로 8384억원(2.1%) 증가했다.
생보사 가운데선 삼성생명의 대출채권 잔액이 가장 컸다. 지난 3월 말 기준 삼성생명의 대출채권 잔액은 33조9446억원을 기록했다. 이어 한화생명 16조9789억원, 교보생명 16조5096억원, NH농협생명 6조9558억원, 흥국생명 5조6206억원, 신한생명 5조3086억원, 동양생명 4조6604억원, 현대라이프생명 2조7991억원 등 순이었다.
특히 NH농협생명의 경우 대기업 대출채권은 지난해 3월 7800억원에서 올 3월 1조3342억원으로 무려 71%나 급증했다. 같은 기간 한화생명이 27.5%, 삼성생명이 21%, 교보생명이 1%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큰 증가폭이다.
생보협회 관계자는 "농협생명은 담보대출인 약관대출, 부동산 대출에 비해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큰 신용대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지적했다. 농협생명의 대기업 대출채권 중 신용대출은 1조2214억원으로, 전체의 91%를 차지했다.
◆'풍선효과' 우려…내달 은행 수준 여신심사 적용
손해보험사의 대출규모 증가세도 가파랐다. 지난 2월 말 기준 손보사의 대출채권 잔액은 50조2826억원으로, 전년 동기 42조641억원 대비 8조2185억원(19.5%) 급증했다.
부동산 담보대출 잔액은 21조9605억원으로 같은 기간 3조1622억원(16.8%) 증가했고, 신용대출 잔액은 3조2860억원으로 4349억원(15.3%) 늘었다. 약관대출 잔액은 9조8010억원으로 9537억원(10.8%) 확대됐다.
삼성화재의 대출채권 잔액은 지난 2월 말 기준 14조9444억원으로 손보사 중 가장 많았다. 이어 동부화재 7조6509억원, 현대해상 7조3135억원, KB손보 6조6763억원 등 순이었다.
손보사의 대기업 대출채권 증가율은 현대해상이 가장 높았다. 현대해상은 지난해 3월 9236억원에서 올 3월 1조4517억원으로 무려 57.2%의 증가폭을 보였다. 다만 신용대출 규모는 -31%로 감소세를 보였고, 부동산 담보대출 증가율은 100%를 기록했다.
올 들어 보험사 대출규모가 증가한 것은 깐깐해진 1금융권 대출심사에서 탈락한 가계와 기업들이 보험사와 같은 2금융권을 두드린 탓이다. 금융당국은 당장 '풍선효과'를 우려하며 다음달부터 보험사에 대해 은행 수준의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적용, 가계부채 구조개선을 유도할 계획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 대출을 받는 가계와 기업의 경우 은행에서 신규대출 또는 만기연장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오는 2020년 새 보험회계기준 도입을 앞두고 자본확충 부담이 큰 보험사로선 부실대출이 증가할 경우 충당금 적립 위험이 커져 유동성에 악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보험사나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의 가계부채를 보다 적극적으로 관리해 '풍선효과'를 차단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일각에선 자산운용 수익률이 감소하고 있는 보험사의 현 상황에서 가계와 기업의 보험사 대출수요 증가는 당장의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한다. 실제로 지난 1월 예금은행 신규 취급액 기준 대기업 대출 이자율(연 3.2%)은 10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1.8%)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시중은행과 비슷한 3% 금리대인 부동산 담보대출을 중심으로 보험사의 전체적인 대출규모가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며 "보험사 입장에선 대출을 통해 국고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운용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