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이남에 서리풀이 무성하다고 해 또는 '상초리(霜草理)'라고 불리던 마을이 있었다. 서리풀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고구려 때 쌀을 '서화(瑞禾)'라고 불렀다는 기록에서 벼가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이곳은 서초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서리풀은 서초의 상징으로 곳곳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서초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고속터미널이 있고 한국 사법부의 중심인 대법원과 대검찰청이 있는 행정과 교통의 요충지다. 그러나 복잡한 강남과 달리 서초는 묘하게 여유가 느껴진다. 도심 곳곳에 숲과 공원이 조심스럽게 숨어 있기 때문이다. 서초동과 반포동, 방배동이 함께 만나는 곳에 있는 산책로 서리풀길도 그 중 하나다.
서리풀공원의 서리풀다리./장병호 기자 solanin@
◆ 서리풀공원부터 몽마르뜨공원까지
서리풀길을 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지하철 2호선 서초역과 방배역, 그리고 3·7·9호선 고속터미널역을 통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방배역에서 출발한다면 4번 출구로 나와 산책을 시작할 수 있다. 서리풀공원과 몽마르뜨공원, 그리고 서리골공원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2시간 정도면 걸을 수 있는 코스다.
방배역 4번 출구를 나오면 조선 태종의 둘째 아들이자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을 모시고 있는 청권사를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부터 서리풀공원이 시작된다. 야트막한 산으로 약 2㎞의 산책로가 이어진다. 도심 속에서 자연의 정취를 한가득 느낄 수 있는 산책로다.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방배동과 서초동 사이에서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과 만나는 묘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한가롭게 숲속을 걷다 보면 어느 새 서리풀다리와 만나게 된다. 이 다리를 건너면 몽마르뜨공원과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원래 아까시나무가 우거진 야산이었다. 그러나 2000년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에서 반포 지역의 원활한 수돗물 공급을 위해 배수지 공사를 시행함에 따라 서초구와 서울특별시의 협의를 통해 주민들을 위한 휴식 공간 제공하고자 배수지 위에 공원을 조성하게 됐다. '몽마르뜨'라는 이름은 인근 서래마을에 프랑스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마을 진입로를 몽마르뜨길로 부르고 있는 것에서 유래했다.
몽마르뜨공원의 누에다리./장병호 기자 solanin@
대검찰청과 대법원 뒤에 있는 이 자그마한 공원은 하늘공원의 축소판처럼 탁 트인 하늘을 만날 수 있는 서초의 명소다. 평일에도 운동을 즐기는 주민은 물론 잔디밭에 앉아 자연을 즐기는 가족들과 놀러온 학생들을 볼 수 있다. 곳곳에서 뛰노는 토끼는 몽마르뜨공원에서 만날 수 있는 색다른 볼거리다.
몽마르뜨공원에서 잠시 휴식을 즐긴 뒤 다시 산책을 이어간다. 서리골공원으로 이어지는 누에다리는 서초를 대표하는 상징 중 하나로 유명하다. 조선시대에 이 일대에 양잠기관인 잠실도회(蠶室都會)가 있었던 점에서 착안해 제작됐다. 누에를 형상화한 독특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곳을 지나 서리골공원을 걸어 내려가면 서리풀길 산책은 끝나게 된다.
◆ 서래마을·방배사이길 등 즐길 거리도
서리풀길 주변에는 즐길 거리도 다양하게 있다. 몽마르뜨공원 인근에 있는 서래마을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한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프랑스인이 모여 사는 곳인 만큼 프랑스 가정식을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부터 유럽 분위기의 상점들이 곳곳에 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주목할만한 동네도 있다. 방배동 42길에 있는 방배사이길이다. 방배동 카페골목과 서래마을 사이에 위치한 방배사이길은 최근 수제품 공방들과 아트 갤러리들이 들어서면서 서울의 새로운 명소로 주목을 받고 있다. 작고 섬세한 인테리어 소품부터 특이한 디자인의 식기, 그리고 빈티지한 액세서리 등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골목 사이사이에 숨겨진 아기자기한 카페와 빵집도 또 다른 즐길 거리다. 매달 두 번째 토요일에는 이곳에 모인 가게들이 함께 참여하는 소규모 마켓 '사이데이 마켓'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