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툭 내뱉는 말에도 따뜻한 정이 있는 남자, 본인이 지키고 싶어하는 것을 끝까지 지키려하는 상남자. '치즈인더트랩'의 백인호 이야기다. 최근 강남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서강준은 백인호를 연기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많은 사랑 속에 드라마가 종영해서 기쁘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백인호를 보내는 게 아쉬워요. 매 씬마다 감독님과 배우들이 상의하면서 작품을 완성하는 게 쉽지 않은데 모든 배우들의 참여도가 높은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지난 1일 종영한 tvN 월화드라마 '치즈인더트랩'은 순끼 작가의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했다. 제작발표회 당시 서강준은 웹툰 속 캐릭터를 그대로 입기보다는 자신만의 백인호를 만들겠다고 자부했다.
"주변 사람들은 제가 연기한 백인호가 따뜻하대요. 웹툰의 인호는 좀 더 차갑고 냉정하다고 해야할까요? 원작 캐릭터를 최대한 살리면서 동시에 서강준 저 자체를 녹이고 싶었어요. 제 말투, 목소리, 표정들이 적절히 어우러졌던 것 같아요. 이번 작품도 그렇고, 항상 지나고나면 모든 연기에 아쉬움이 남아요. '좀 더 표현했으면 어떨까? 이때는 이렇게 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다시 곱씹게 되더라고요."
백인호는 단순무식에 다혈질이지만,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는 한없이 따뜻해지는 인물이다. 유정(박해진)과는 어릴 적부터 친형제처럼 자랐으며 한때는 촉망받는 피아노 천재였다. 하지만 사소한 오해로 유정과 틀어지고, 유정으로 인해 손을 다치게 되는 비운의 사나이다. 서강준은 인호의 매력이 솔직함이라고 말했다. 본인이 느끼는대로 표현하고, 계산하지 않는 인호의 모습은 시청자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서강준은 이번 작품으로 '여심스틸러'라는 애칭을 얻었다.
"드라마 내용 자체가 좋았기 때문에 그 안의 백인호도 예쁘게 봐주신 것 같아요. '치즈인더트랩'은 어느 한 캐릭터를 위한 드라마가 아니에요.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라 매력적이었던 거고요. 모든 캐릭터가 사랑받았고, 저도 그 중 한명인 거죠.(웃음)"
'치즈인더트랩'은 중반기에 들어서면서 안팎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남자주인공 대신 백인호의 분량이 늘면서 볼 멘 소리를 하는 네티즌도 더러 있었다.
"스텝과 배우 분들이 공들여 만든 작품인데 안 좋은 댓글이 달리면 저도 마음이 편하지 않죠. 시청자가 원하는 방향성과 기대하는 것들과 다르게 그려져서 많이들 아쉬워하셨던 것 같아요. 당연히 이해는 하죠. 그만큼 드라마에 애정이 있으니까 평가도 해주시는 거고요.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분량이나 내용 권한은 배우들에게 없다는 거예요."
드라마는 열린 결말로 끝이 났다. 백인호는 재활에 성공했고, 뒤늦게 음대에 진학했다. 유정과 삼각관계를 형성하던 홍설과는 결국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유정과는 그동안의 오해를 풀며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가족에 대한 결핍이 있는 백인호에게 유정은 '헤어진 가족, 가족같이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극 중 유정은 직접 자행한 일은 아니지만, 다른 이의 손을 빌려 인호의 손을 못쓰게 만들었다.
"제게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친구를 못 볼 것 같아요. 꿈을 꿀 수 없게 된 건데 저한테 피아니스트라는 의미가 얼마나 큰 지가 더 중요하죠."
실제로 어릴 적 피아니스트를 꿈꾸기도 했던 서강준은 이번 작품에서 직접 피아노 연주를 직접 선보여 큰 화제를 모았다.
"이번 생애에는 배우 한 길만 걷고 싶어요. 하지만 다음 생애가 제게 주어진다면, 그때는 다섯 살때부터 피아노 조기교육을 제대로 받아서 피아니스트의 길을 걸어보고 싶어요."
2013년 웹드라마 '방과 후 복불복'으로 데뷔한 그는 '앙큼한 돌싱녀' '가족끼리 왜이래' '화정' 등에 출연했다. 지난해 사극에 첫 도전해 연기력 논란을 빚기도 했지만, 대중의 화살을 피하지 않았다.
"사극에서 감정 표현이 어려웠던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걸 계기로 더 성장할 수 있었어요. 차기작이요? 아직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겠다 정해진 건 없지만, 나이대에 맞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지나고 나면 할 수 없는 그런 역할이요. 30, 40대가 되어서는 느와르도 해보고 싶고, 더 시간이 흐른 뒤에는 대중에게 색깔있는 배우, 신뢰감을 주는 배우로 자리하고 싶어요. '아, 서강준이라서 이 역할을 이렇게 표현했구나!'라는 감탄사가 나오는, 가벼운 역할을 맡더라도 묵직한 존재감이 있는 배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