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인사마당에 서 있는 윤영석 작가의 '일획을 긋다'. 사진=류주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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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을 먹물에 깊이 담가 꺼내 한 번에 긋는 일필휘지( 一筆揮之)는 동양회화의 백미다. 그림은 담백하지만 붓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역동적이다. 인사동 초입 7m 크기의 거대한 붓을 보고 있자면 우리 전통문화의 역동성에 압도당한다.
'일획을 긋다'는 약 7m 크기의 대형 조형물로 거대한 붓을 형상화하고 있다. 사진=류주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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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선 안국역 6번 출구 문화의 거리 초입 북인사마당에 서 있는 거대한 붓은 윤영석 작가의 작품인 '일획을 긋다'이다. 2007년 서울시가 도시 갤러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치했다. 인사동 고유의 정체성과 현대성을 함께 담아 이곳을 찾는 해외 방문객들로 하여금 서울을 기억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다. 즉 인사동의 랜드마크와 같은 역할을 바란 것이다.
'일획을 긋다'는 서울시가 2007년 도시 갤러리 프로젝트이 일환으로 설치한 작품으로 인사동의 랜드마크 역할을 기대했다. 사진=류주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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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은 잘 알려져 있듯이 본래 조선시대 국가 예술기관인 도화원이 있어 예술 활동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안국동 사거리에서 종로 2가 사거리까지 약 700m 가량의 '인사동 문화의 거리'에 지금은 필방, 화랑, 골동품 가게, 전통 찻집과 토속 음식점 등 다양한 한국 전통문화상점이 즐비하다. 외국인들의 주요 한국 관광 코스이자 지필묵의 재료를 구입해야 하는 한국화 작가들이 발걸음이 이어지는 곳이다.
인사동의 필방들은 한국화 작가들이 재료를 구하는 곳이자 외국인들에게는 좋은 관광코스가 되고 있다. 사진=류주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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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매주 수요일 화랑의 전시 오프닝 리셉션을 찾는 방문객들로 꾸준한 주중 인파가 있다. 특히 차 없는 거리가 되는 휴일이면 거리가 꽉 메워 질만큼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최근에는 급증하는 중국 관광객과 한복 나들이 유행이 불어 젊은 여학생들의 발길이 더해진다. '인사동 열풍' 이다.
거대한 붓의 끝은 실제 물이 흘러나오도록 제작돼 있다. 사진=류주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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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듯한 거대한 붓은 이같은 인사동 열풍에 전통의 힘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수직으로 서있는 붓의 끝에는 먹이 흠뻑하다. 그 먹으로 한 번에 그려진 원에는 생생한 기운이 넘쳐난다. 실제 붓 끝에서는 담수가 흘러 나올 수 있게 제작돼 있다. 검은 색깔의 오석으로 음각 처리한 부분에 물이 고이게 되면 먹물처럼 보이는 것이다.
검은 돌 위를 흐르는 물은 마치 먹물처럼 보인다. 사진=류주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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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대에는 대형 체온계가 새겨져 있는데 사람의 체온인 36.5도에서 멈춰있다. 반대편 붓대에는 명필 석봉 한호의 글씨체로 '대한민국 전통문화예술중심지 인사동' 문구가 새겨져 있다. 높이감 있는 조형물의 원형 석재 기단은 벤치로 활용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누구든 걸터 앉아 쉴 수 있다.
붓대의 한면에는 체온계가 36.5도에 맞춰져 있다. 사진=류주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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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대의 다른 쪽에는 석봉 한호의 글씨체로 '대한민국 전통문화예술중심지 인사동'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사진=류주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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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인사동을 상징하는 조형물에 많은 것들을 담고 싶었나 보다. 그는 "붓의 형상은 그 자체로 한국 전통 문화의 상징이면서 마을의 입구를 지키고 서있던 장승의 개념이다. 주변의 기운을 한 곳으로 모으고 있는 듯한 전통 붓의 형상은 현대문명 속에서도 힘차게 살아 숨쉬고 있는 전통문화의 모습을 상징한다"라고 설명한다.
작품 하단에 낙관처럼 작가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사진=류주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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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도시 갤러리 프로젝트란 일상 속에서 시민들이 예술작품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시민과 예술가가 함께 서울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표현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공공미술의 개념을 '공공장소에 놓이는 미술' 에서 '시민의 공적 문화 생활 속에 배치되는 미술'로, '미적 관심이나 형태의 단순 전시' 에서 '도시와 시민 공동체의 필요를 찾고 드러내는 소통' 으로 확장하자는 취지다. 이 프로젝트는 새로운 도시 패러다임에 부응해 공공미술을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예술행위로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글 : 큐레이터 박소정 (www.trinityseoul.com)
사진 : 사진작가 류주항 (www.mattry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