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덕 작가의 '아름다운 사람들'은 음각으로 조각돼 같은 형상이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보인다. 사진=류주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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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상대적이다. 사회마다 집단마다 미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 개인들 간에도 차이가 난다. 같은 사람이라도 살아가면서 미적 기준이 뒤집히기도 한다. 인생을 바꾸는 사건 뒤라면 더욱 그렇다. 가령 암에 걸렸다는 의사의 한마디를 들었다고 상상해보자. 평소 무심했던 '건강한 일상'이야말로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서울대 암병원 앞 이용덕 작가의 '아름다운 사람들'이 보내는 메시지다.
4호선 혜화역 4번출구 방향 성균관대입구사거리에서 창경궁로를 따라 오면 왼편으로 서울대 암병원이 보인다. 병원 앞 정류장에 멈춰 선 버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무척 크게 들릴 정도로 고요한 동네다. 인적이 드문 탓이다. 고요한 가운데 한낮 눈부신 햇살이 병원 앞 '아름다운 사람들'을 비추고 있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환자의 쾌유를 기다리는 어린 아이와 건강해진 환자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사진=류주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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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건강한 일상의 사람들을 형상화하고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라고 명명했다. 정면에 자전거를 타는 여인의 건강한 모습과 측면에 가족으로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가 건강해진 환자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다. 작가는 음각으로 형상을 만들었지만 햇살을 받으면서 음각은 툭 튀어나온다. 언뜻 보면 양각처럼 보인다. 착시 현상을 응용한 '역상' 기법이다.
이용덕 작가는 역상 기법을 활용해 사람들의 시선을 평범한 일상으로 이끈다. 그의 역상 조각에서는 두 가지 착시가 일어난다. 우선, 실제로는 움푹 패여진 음각 이지만 얼핏 보거나 사진으로 보면 입체적으로 튀어나와 있는 양각으로 보인다. 주로 채색과 음영이 강하게 표현될수록 양각으로 보여지는 착시가 심하다. 다음으로 보는 이가 이동하는 각도에 따라 인물의 시선과 동작이 달리 보인다. 마치 작품 속 인물이 감상자를 따라 오는 듯하다. 이리저리 작품의 진실을 확인하려다 보면 작품에 시선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처음 접하더라도 참신한 기법 때문에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고, 일상 풍경을 담은 소재이기에 대중적으로도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창경궁 홍화문 맞은편 언덕배기에 자리한 서울대 암병원은 한낮 햇살이 환히 비추는 곳이라 작품의 역상 기법이 더욱 두드러진다. 사진=류주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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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은 병문안이나 가족을 간병하기 위해 암병원을 찾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작가는 이렇게 사람들의 이목을 끈 뒤 '건강한 일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역설한다. 서울대 암병원은 "평소 소중함을 잊기 쉬운 '건강한 일상' 에 아름다움이 함께 하는 것이며 동시에 암을 극복하고 완치한 행복한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과 위로를 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용덕 작가는 포스코 박태준 회장의 입상 조각을 제작해 지난 3편에서 잠시 소개한 바가 있는데 그의 작품은 유독 대형 병원에서 자주 마주치게 된다. 풍납동 아산 병원 1층 아산 정주영 회장 부부상도 그가 작업한 같은 방식의 역상 조각이다. 신촌 연세대 세브란스 암병원 로비에는 작가의 대형 역상 조각 '나무와 자전거'가 있다. '아름다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환자의 쾌유를 기원하는 작품이다. 큰 녹색 나무는 생명력을 상징하고, 자전거를 타고 시원하게 질주하는 사람은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의미한다.
신촌 연세대 세브란스 암병원 로비에 설치된 이용덕 작가의 '나무와 자전거'. 사진상으로는 양각으로 튀어 나와 보이지만 음각으로 작업한 역상 기법이다. 사진=류주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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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기발한 조각 기법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깊은 인상을 남겨 이제는 한국을 넘어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조각 작가로 우뚝 섰다. 2008년 싱가포르비엔날레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가장 많은 관람객의 발길을 머무르게 했던 작품이 이용덕 작가의 작품이었다. 작가는 당시 전 세계 36개국 50명의 작가 중 한국을 대표해 참여한 3명의 작가 중 한 명이었다.
글 : 큐레이터 박소정 _ 아트에이젼시 더트리니티(www.trinityseoul.com)
사진 : 사진작가 류주항 (www.mattry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