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택(49) 감독이 달라졌다. '친구'처럼 거칠고 폭력적인 남성들의 세계를 그리던 그가 인간적이고 따뜻한 이야기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18일 개봉하는 '극비수사'다.
곽경택 감독의 변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장편 데뷔작인 '억수탕' 때부터 그의 장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따뜻하게 그리는 것에 있었다. 초창기 단편 '영창 이야기'를 장편으로 만든 '미운오리새끼'도 힘을 뺀 편안한 연출로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그런 점에서 '극비수사'는 지극히 곽경택 감독스러운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1978년 부산 지역에서 일어난 실제 유괴사건을 다룬다. '친구2'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취재를 하던 중 부산 지역에서 오래 활동했던 공길용 형사를 만나 알게 된 당시 유괴사건에 얽힌 비화가 영화의 출발점이 됐다. 사주로 범인의 단서를 제시한 김중산 도사의 역할이 사건 수사에 톡톡한 역할을 했다는, 그동안 세상에 알려진 적 없는 이야기였다. 곽 감독은 영화로 만들기 좋은 소재라는 '동물적 직감'을 느꼈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인상적이다. 데모 현장에서 서로 스쳐지나가는 공길용(김윤석) 형사와 김중산(유해진) 도사의 모습, 그리고 비릿한 생선과 가득 쌓인 돈이 오버랩 되는 장면 등이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70년대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임팩트 있게 담은 오프닝이다. 곽경택 감독은 "짧은 장면이지만 제작비가 꽤 많이 들어갔다"며 "편집을 전적으로 편집감독에게 맡겼다. 김창주 편집감독이 잘 해줘서 좋은 장면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70년대의 사실적인 재현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기존 영화들이 세트를 중심으로 과거를 재현한 것과 달리 '극비수사'는 다양한 로케이션을 바탕으로 과거의 모습을 생생하게 구현해냈다. 곽경택 감독은 "70년대를 다룬 다른 영화를 보면 공간들이 다 좁게만 나와서 답답했다"며 "작정하고 길거리를 마음대로 훑자는 생각이 있었다"고 로케이션 촬영 이유를 설명했다. 유괴범과의 접선 장소인 레코드 가게와 약국, 그리고 여의도 KBS 건물 앞이 그런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세트로 유공 주유소를 만들고 CG로 에어컨 실외기를 일일이 지운 점은 곽경택 감독의 디테일한 고집을 잘 보여준다. 그는 "미술팀과 CG팀이 고생을 많이 했다"며 영화의 공을 스태프들에게 돌렸다.
유괴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영화의 관심은 사건의 해결 과정보다 신념과 소신을 지키려는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에 있다. 곽경택 감독이 '극비수사'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도 바로 이 '소신'이다. 영화가 유괴사건이 해결된 뒤 공길용 형사와 김중산 도사가 겪게 되는 후일담을 다소 길게 보여주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주는 결말이지만 그럼에도 곽경택 감독은 따뜻한 마무리로 이들의 삶을 응원하고 싶었다.
"실제로 두 분의 삶이 그랬어요. 영화와 같은 일을 겪었지만 그 이후에도 웃으면서 남은 삶을 사셨으니까요. 좌절을 겪더라도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에너지를 영화를 통해 주고 싶었습니다."
누군가는 '극비수사'를 보면서 정치적인 해석을 할지 모른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 일어난 이야기를 지금 시점에서 꺼냈다는 점에서 그렇다. 곽경택 감독은 "꿈은 꿈이고 해몽은 해몽인 것처럼 영화에 대한 해석이 그렇다면 그것도 맞는 말"이라고 다양한 해석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다만 2년 전부터 기획한 영화인 만큼 시작부터 정치적인 의도는 없었다는 사실도 함께 강조했다.
아이를 살리는 이야기이기에 지난해 있었던 세월호 참사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곽경택 감독은 "세월호 참사는 너무 큰 아픔이었다. 그래서 우리 영화가 세월호와 같이 언급되는 것은 더 아플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공길용 형사와 김중산 도사는 지난 11일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토크시네마 행사에 참석해 영화를 처음 관람했다. 곽경택 감독은 "두 분 다 '영화가 따뜻해서 좋다'는 말씀을 해주셨다"며 "특히 공 형사님은 '생각해보면 곽 감독이 취재 때문에 제주도까지 올 것도 아니었는데 희한하게 이렇게 찾아와서 내 이야기가 영화가 됐다'고 회상하셨다"고 두 사람의 반응을 전했다.
한동안 흥행 부진을 겪었던 곽경택 감독은 초심으로 돌아간 '미운오리새끼' 이후 야심차게 '친구2'를 선보였다. 하지만 흥행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다. 그럼에도 '친구2'의 취재 과정 속에서 '극비수사'가 탄생한 만큼 곽 감독은 "새옹지마인 것 같다"며 덤덤하게 말했다. '극비수사'가 곽경택 감독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생긴다. "저는 자꾸 다른 곳으로 튀고 싶어요. 이번에 이런 영화를 했으니 다음에는 안 해본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죠."
차기작도 이미 정한 상태다. 장르는 판타지 스릴러로 캐스팅 마무리 단계다. 오는 8월 말 크랭크인 예정이다. 곽 감독은 "처음부터 눈 못 떼고 달리는 영화를 해보고 싶다"고 새 작품을 소개했다. "이번에도 서민들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는 귀띔도 빼놓지 않았다.
사진/라운드테이블(한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