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공포가 다시 엄습해 오고 있다. 정부의 원·엔 환율 방어선으로 여겨지던 100엔당 900원 선이 7년2개월 만에 붕괴됐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오전 한때 원·엔 환율은 100엔당 899원을 기록했다. 원·엔 환율이 900원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 2008년 2월 29일(895원) 후 처음이다. 이날 원·엔 환율은 다시 900원대로 진입해 100엔당 903원(오후 3시 기준)까지 올랐다. 원·엔 환율은 원화와 엔화를 직접 거래하는 외환시장이 없어 원·달러 환율과 엔·달러 환율을 계산해 정하는 재정환율을 사용한다.
전문가들은 "엔저의 가속화는 한국 경제에 대한 경고의 시그널로 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처럼 엔화 약세의 가속화가 진행되면서 한국 경제에 미칠 파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엔저 여파로 국내 수출기업들의 채산성 악화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원·엔 환율 하락세는 가뜩이나 저조한 수출에 더욱 타격을 줄 뿐만 아니라 국내 금융시장에도 적잖은 위험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 일본 제품의 가격경쟁력은 높아진다. 반면 우리 상품은 불리할 수 밖에 없다. 수출입은행은 원·엔 환율이 10% 하락할 때마다 국내 수출은 평균 4.6%씩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올해의 환율 전망이 이미 850원선까지 나와 있는 만큼, 수출은 갈수록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올 들어 수출은 이미 3개월째 감소세다.
문제는 정부의 대응책이 딱히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엔저를 견제할 수 있는 금융 외교 등 원·엔 환율을 안정시킬 대책마련을 시급히 서둘러야 한다. 이미 우리는 지난 2006~2007년 원·엔 700원대의 엔저 터널을 극복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그 때는 글로벌 경기 호조세가 받쳐주고, 중국 성장세도 왕성해 수출에서 엔저 부작용을 상쇄할 여지가 충분했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하지 않으려면, 정부는 금융적 정책수단의 동원에 신중해야 한다. 당장 가격 경쟁력을 조금이라도 만회할 통화정책을 적극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기업들 역시 자구노력과 함께 가격경쟁력을 앞서는 제품 개발에 힘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