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치사사건 은폐 시도 묵인· 방조 드러나 자진 사퇴 촉구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법 박노수(사법연수원 31기·49) 판사에 이어 이번에는 현직 부장판사가 박상옥 대법관 후보를 강하게 비판하는 글을 올려 파문이 커지고 있다. 이로써 국회청문회에서 대법관 자질을 충분히 검증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지난 20일 인천지법 부천지원 소속 문수생(48·사법연수원 26기)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망에 "과오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반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정당화하는 박 후보자를 우리는 대법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박 후보자는) 독재정권에 의한 고문치사사건의 은폐 시도를 묵인하거나 방조한 혐의가 짙고 수사에 참가한 동료검사조차도 외압을 인정하며 '치욕적이었다'고 술회하는데도 '당시 아무런 외압을 느끼지 못했고 2차 수사 때 최선을 다해 사건 진상이 드러났다'는 등 합리화하는 데 급급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박상옥 후보자에게 재판을 받는 국민에게 법관들은 사법부의 신뢰를 이야기할 수 있는가"라고 호소했다. 이어 "이제라도 박 후보자 스스로 자신에게 제기되는 여러 문제를 겸허하게 돌아보고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 본인과 사법부, 나아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과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박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앞서 16일에는 서울중앙지법 박노수(사법연수원 31기·49) 판사가 "청문회 전 과정을 보니 박 후보자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맡았던 검사로서 안기부와 경찰의 은폐·축소 기도를 묵인 또는 방조한 검사에 가깝다고 판단된다"는 내용의 글을 실명으로 올렸다.
박상옥 후보자는 이달 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축소·은폐에 관여했다는 주장과 관련해 "알면서도 진실 은폐에 관여하는 등 검찰의 본분을 저버리는 처신을 결코 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또 "1987년 민주화를 앞당긴 결정적 도화선이 된 박종철 사건의 역사적 의의와 중요성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면서 "그런 역사적 사건에 제가 평검사 시절 수사팀의 일원으로 참여해 미력하나마 진상을 밝히기 위해 하루 1~2시간 겨우 눈을 붙이면서 최선을 다해 수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박 후보자의 국회 청문회를 앞둔 3월 25일 성명을 통해 "박상옥 후보자는 청문회 개최에 앞서 자진사퇴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민주주의의 진전에 이바지하기를 바란다"며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에도 "맹성을 촉구한다. 거짓과 궤변으로는 벼랑 끝에 내몰린 서민들을 살릴 수 없다"고 밝혔다.
사제단은 계속해서 "박상옥 후보자는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하고 축소시킨 장본인 가운데 하나"라며 "줄기차게 역사를 퇴행시켜온 새누리당이니 그들의 후안무치는 새삼 나무랄 일도 못 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의 이지현 팀장(사법감시센터)은 박 후보자에 대해 "법원 내부에서조차 자격이 없다며 반대하는 분위기인데 본인만 문제없으면 되는거냐"면서 "진실을 외면하지 말고 자진사퇴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피력했다.
이 팀장은 또 "처음부터 검증을 철저히 해서 대법관으로서 자질이 없다는 사실을 밝혔다면 이렇게 시끄럽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박 후보자가 국회에 제출한 임명동의안에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담당검사였다는 내용이 빠져 있어 고의 누락 의혹이 일고 있다.
권력의 외압에 굴복해 수사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던 박 후보자가 대법관 후보로 지명된 것을 두고 '부적절한 인사'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의당 서기호 의원은 "외압에 굴복해 헌법과 법률에 부여된 수사권을 포기했던 박 후보자가 대법관 후보로 지명된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박 후보자 측은 "당시 수사팀 일원으로 최선을 다해 수사했고, 수사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