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콴유 전 총리, 싱가포르 부국으로 만든 비결은? '청렴결백'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타계했다는 소식에 전세계가 애도하고 있다. 리콴유 전 총리에 대한 애도는 그가 동남아시아의 소국이었던 싱가포르를 부국으로 만들어낸 업적이 있기 때문이다.
23일 새벽 싱가포르 총리실은 성명을 통해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가 오늘 오전 3시18분 싱가포르 종합병원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밝혔다. 싱가포르의 경제기적의 기틀을 마련해 '국부'로 존경받는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향년 9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지난 2014년 세계 각국의 부정부패 행위를 감시하는 비정부기구인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는 '아시아 부패지수 보고서'를 발표했다.
'세계 부패지수 보고서'는 각국의 정치가와 공무원들의 청렴도를 점수로 평가한 것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가장 청렴한 아시아 국가는 1.60점을 받은 '싱가포르'였다.(10점에 가까울 수록 부패) 한국은 이 보고서에서 중국, 필리핀과 같은 7점대의 점수를 받았다.
싱가포르는 지난 2011년에도 '세계 부패지수 보고서'에서 덴마크, 뉴질랜드와 같은 9.3점으로 공동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싱가포르가 이처럼 세계에서 손 꼽히는 청렴 국가가 된 것은 리콴유의 힘이 크다.
리콴유는 싱가포르의 화교 이민자 집안 출신으로 1945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 전까지 영국문화 신봉자였던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 법대에서 공부하던 중 영국인들로부터 인종차별을 겪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리콴유가 민족문제, 인종차별 문제에 눈을 뜨는 데 영향을 줬다. 리콴유는 1950년 영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싱가포르로 돌아와 정치계에 입문했고 1965년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에서 분리되면서 독립 싱가포르의 총리로 취임한다.
그러나 당시 싱가포르는 높은 실업율과 경기침체 등으로 인해 어두운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많은 부분을 말레이시아에 기대고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리콴유는 좌절하지 않고 특유의 리더쉽으로 싱가포르를 이끈다.
리콴유는 싱가포르의 경기침체를 회복하기 위해 다른 제3세계 국가들과는 다른 방향의 정책을 수행한다. 외국인 기업을 자국에 유치해 일자리를 창출한 것이다. 아무런 자원과 자본이 없고 인구만 많던 싱가포르의 현실에서는 해외투자유치가 최선의 방책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리콴유는 노동사건 전문변호사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우호적이지만 차츰 기업들을 위한 정책을 펼쳐 무분별한 노사분쟁을 억제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연간 임금 인상률을 2% 내외로 정한 것이다.
하지만 리콴유가 가장 크게 평가를 받는 부분은 싱가포르 정치계의 부정부패를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그는 부패행위조사국(CPIB)를 세워 국가 공무원들 중 부패 용의자로 여겨지는 사람이 있으면 그 가족들까지 수색하고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리콴유는 그렇다고 채찍만 휘두르지 않았다. 그는 깨끗하고 정직한 정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무원들의 소득을 높여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1994년에 고위 공직자들의 연봉을 전문직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올렸다. 연봉이 높아지자 뛰어난 인재들이 국가 공무원이 되기 위해 지원했고 자연스럽게 뇌물 수수도 사라졌다.
또한 경제개발과정에서 소홀히 하기 쉬운 환경보호 사업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때문에 다른 대다수의 공업화 국가와는 다르게 싱가포르는 공업화를 이루면서 오히려 환경이 더 깨끗해졌고 오염도 줄어들었다.
심지어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중공업지대인 주롱 공업단지 한복판에 세계적인 희귀조류들을 모아놓은 '주롱 새 공원'을 만들어 놓았을 정도다.
싱가포르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인증한 수돗물을 안심하고 그대로 마실 수 있는 전세계의 몇 안되는 국가이기도 하다.
또한 리콴유는 법제도를 엄격하게 정비했다. 대표적인 것이 '태형'이다. 리콴유는 영국 유학시절 경험했떤 태형의 범위를 확대해 많은 종류의 범죄에 적용했다.
때문에 싱가포르는 탈법, 탈세 등이 현저히 줄었고 전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잘 막지 못하는 매춘 사업도 거의 없는 나라가 됐다.
이런 엄청난 업적 덕분에 싱가포르는 자원과 자본의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부국이 됐다.
리콴유의 타계에 오바마 미국 대통령, 오바마 UN총장 등의 유명 인사들이 애도를 표한 까닭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