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욕심은 없었는데 전셋값 올려달라는 집주인을 두 번이나 만나다보니 집을 진짜 사야하나 생각이 든다. 대출금리가 싸다지만 갚아야 할 학자금도 남았고 이미 대출받은 것도 있고, 선듯 돈을 빌리는 게 쉽지 않다."
전셋값 인상 요구에 두번째 이사를 준비 중인 허씨(36·서울)는 최근 전월세 안정화 대책이니 부동산 시장 활성화니 하는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나마 저금리 기조에 대출이라도 염두에 둘 수 있는 것에 만족한다고 했다.
올해는 역대 최대치의 아파트 분양 물량이 쏟아져 나올 전망이다. 이에 분양시장에 활기가 예상되며 매매거래량도 지난해보다 상승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각종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과 저금리 기조가 맞물리며 지금이 내 집 마련의 적기라고는 하지만 허씨처럼 전세입자가 매매 시장으로 당장 나서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일단 저금리 기조가 언제까지 유지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택가격이 오를 것이란 확신이 없다. 전세 수요와 월세 수요는 매매 수요와 엄연히 다르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정부에서는 저금리의 주택 대출 상품을 잇달아 선보였지만 이미 빚을 안고 시작한 대부분의 세입자들은 망설일 수 밖에 없다.
전월세 안정화을 위해 저금리 전세자금 대출을 늘리며 임대주택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지만 실제 수요자들은 달갑지 않다는 반응이다. 특히 기업형 임대주택사업(뉴스테이)도 주거 안정에 얼마나 기여할지 낙관할 수 없다. 정부의 드라이브에도 건설사들은 아직도 참여 여부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중산층 전세 수요자가 반전세에 가까운 월세로 이동할지도 의문이다.
지금도 전셋값은 천정부지 오르고 있다. 전세가율이 80%에 달하는 곳도 많다. 서울의 경우 재건축·재개발 이주가 본격화되는 올 해부터 향후 3년은 전세난이 악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빚을 내 집을 사라는 정부와 더이상 빚지기 싫다는 세입자들의 줄다리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매매시장을 달구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전세는 전세, 월세는 월세에 맞게 시장 맞춤형 방안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