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하면 사과, 성주 하면 참외, 나주 하면 배 하는 식으로 전국 각지를 다니다 보면 그 초입에 지역특산물 상징을 세워놓은 걸 볼 수 있다. 비슷한 품목을 내세우는 곳도 있지만 앞에 지역명을 붙이기에 크게 혼란스럽지는 않은 편이다. 청양고추만 빼고 말이다.
청양고추 상징물은 충남 청양에서도 경북 청송이나 영양에서도 수없이 만날 수 있다. 고추라는 품목 앞에 붙은 지역 이름까지 '청양'으로 똑같다. 해당 지자체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들어가봐도 마찬가지다. 과연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사실 청양고추는 두 가지로 구분해 말해야 한다. '청양에서 나는' 청양고추와 매운 맛이 나는 '품종 이름' 청양고추가 그것이다. 지역명과 품종명이 같아서 벌어지는 혼란이다.
일반적으로 청양고추라고 하면 매운 맛이 나는 청양고추를 가리킨다. 청양고추는 1983년 종자회사인 중앙종묘의 유일웅 박사가 제주산 고추와 태국산 고추를 잡종 교배해 얻어낸 종자로, 청송과 영양지역의 고추재배 농가를 대상으로 3년 동안 연구와 시험재배를 하면서 지역명을 한 자씩 따 '청양고추'라 이름 붙였다.
물론 충남 청양에서는 그런 역사적 연원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청양고추의 원산지가 충남 청양이라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연구사업을 벌이기도 하고 홍보용 책자를 만드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매년 열리는 청양고추축제도 비슷한 맥락이다.
특산물을 두고 원조 논란을 벌이는 게 비단 고추만은 아니어서 대게의 고향을 두고도 경북 영덕과 포항, 울진 등이 서로 원조를 자처하고 있는 형국이다. 세 지역 어민들이 대게를 잡는 바다는 큰 차이가 없는 데도 말이다.
전국 지자체들이 특산물을 선정하고 홍보하는 데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요즘, 이런 웃지 못할 논란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쉬이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정작 중요한 것은 논란 끝에 원조임을 인정받는 것보다 그 재료의 특징을 간파하고 더 나은 풍미를 위한 요리법 개발과 유통시설 개선과 같은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게 아닐까 싶다. 무슨 특산물을 앞세웠더라도 결국 막걸리에 파전으로 끝나는 비슷비슷한 지역 축제들을 보면 그런 생각은 더욱 확고해진다. /'다시,서울을 걷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