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원(36)이 엄마가 됐다. 그것도 세 아이를 둔 친구 같은 엄마다. 철부지 남편이 못마땅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함께 가족을 굳건히 지켜가려는 따뜻함이 있는 그런 엄마다.
고생도 도전도 마다하지 않는 배우 하지원에게 영화 '허삼관'의 엄마 옥란은 자연스러운 행보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지원이 이 도전을 처음부터 쉽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센' 캐릭터는 해봤지만 '억센' 캐릭터는 안 해본 하지원에게 옥란은 맞지 않는 옷과도 같았다.
그런 하지원을 '허삼관'으로 이끈 것은 시나리오에 대한 호감, 그리고 감독 겸 주연을 맡은 배우 하정우의 한 마디 말이었다. "정우 씨가 저와 옥란이 너무 잘 어울린다는 거예요. 궁금했어요. 뭐가 나와 어울린다는 거지? (웃음) 그런데 '허삼관'은 시나리오를 읽고 난 뒤 그 잔상이 머리속에 남더라고요. 궁금했어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옥란을 제가 표현하면 어떨지 말이죠."
연기 인생 첫 엄마 연기였지만 하지원은 철저한 캐릭터 분석 대신 자연스럽게 역할에 녹아드는 방식을 택했다. "모성애는 계산한다고 표현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현장에서 정말 놀았어요. 아이들과도 편안하게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감정이 나왔죠. 최대한 '릴렉스'하면서 찍었어요." 배우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주는 하정우 감독의 배려, 그리고 많은 선배 배우들이 함께 하는 즐거운 촬영 현장은 드라마 '기황후'의 연이은 밤샘 촬영으로 지쳐 있던 하지원에게 크나큰 '힐링'이 됐다.
영화는 제목처럼 하정우가 연기하는 허삼관에 보다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매 작품마다 늘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왔던 하지원이 하정우의 뒤를 받쳐주는 모습은 일면 낯설다. 그러나 하지원은 "처음부터 캐릭터가 아닌 시나리오를 보고 선택한 영화였다"며 "엄마라는 역할을 이렇게 예쁜 영화로 할 수 있는 것이 오히려 행운이었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액션 같은 장르영화에서 주로 활약한 하지원에게 가슴 따뜻한 감동을 전하는 '허삼관'은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좋은 기억과 경험으로 남았다.
2000년 '진실게임'으로 충무로에 첫 발을 내딛은 하지원은 여배우로서는 쉽지 않은 도전을 과감하게 소화하며 15년 남짓한 긴 시간을 많은 작품들로 채워왔다. 배우로서 한 길을 걸어오는 동안 힘들거나 지치는 순간이 있었을 법 하다. 그러나 하지원은 "배우라는 직업이 지겨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한다. "배우라는 게 일 같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좋으니까 하는 거죠. 좋아하는 걸 하니까 에너지가 계속 나오는 것이고요(웃음)."
엄마 연기까지 소화해낸 하지원에게 또 다른 도전이 남아 있을까. 하지만 하지원은 "아직 욕 연기는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며 웃음을 지었다. 옥란처럼 한 사람의 삶을 깊이 있게 표현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다. 올해도 바쁜 한 해가 되겠지만 그렇다고 서두를 생각은 없다. 하지원에게 중요한 건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가 좋아하는 말이 '지금 이 순간'이에요. 다음의 무언가를 미리 고민하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려는 마음이 있어요. 그런 마음이 있기에 배우로서도 현장을 더 많이 즐기면서 일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좋아하는 연기를 계속 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웃음)."
사진/라운드테이블(이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