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에 있는 8세기 초엽의 불교유적 법천사지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차량 네비게이션에 '법천사지'라 입력하고 길을 나섰지만 네비게이션은 엉뚱하게도 잡초로 무성한 농로로 이끌었다. 결국 법천사지는 한참을 헤맨 뒤에야 찾을 수 있었다. 초창기 GPS 데이터를 측정할 때 생긴 오차를 제대로 수정하지 않았거나 그 데이터를 지도에 입히면서 오류가 생겨 발생한 문제로 보였다.
사실 비록 덜 알려진 문화재를 찾아다니다 낭패를 본 게 처음은 아니다. 국보나 보물 혹은 유명한 문화재가 아닌 한 네비게이션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나온다 해도 법천사지의 경우처럼 정확하지 않은 안내를 하는 경우도 적잖다. 이정표에 의지한다 해도 찾기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대로변에는 방향이나 거리 표시를 해두었지만 정작 작은 길로 들어서면 갈림길 등에서 적절한 안내가 이뤄지지 않는 탓이다.
막상 문화재까지 잘 찾아간다 해도 문제가 끝나는 게 아니다. 문화재 안내판의 설명 문구가 지나치게 현학적이거나 애매하고 심지어 내용이 틀리거나 맞춤법과 띄어쓰기조차 틀린 경우가 부지기수다. 또 그 문화재의 내력보다 정면 몇 칸 측면 몇 칸 하는 식으로 건축 구조에만 집중해 설명한다든지, 무얼 말하려는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백과사전식 나열을 한 것들이 수두룩하다.
그렇잖아도 문제 많은 안내문구의 색칠이 벗겨지거나, 안내판 위를 덮어둔 유리판이나 아크릴판 덮개에 햇빛이 반사돼 안내문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내용을 떠나 안내판을 문화재에 바짝 붙여 세운 나머지 시선을 방해하는 것도 있다.
몇 해 전부터 서울 창덕궁을 시작으로 문화재 안내판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는 있다. 하지만 아직은 예산 문제나 담당자들의 문제의식 결여 등으로 전국적인 수준의 개선 움직임은 더딘 듯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도로명을 기반으로 한 새 주소체계를 도입하면서 할 일이 배가 된 모양새다. 과연 문화재 안내판과 안내 시스템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들은 언제쯤 해소될 수 있을까.
/'다시,서울을 걷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