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물보다 뜨겁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뜨거운 피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 피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순혈주의. '허삼관'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피를 파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순혈주의자인 가장의 이야기를 웃음과 눈물로 담아낸 가족 드라마다.
주인공 허삼관(하정우)에게 피는 자신의 전부와도 같다. 한국전쟁의 끄트머리에 접어든 1953년, 육체노동으로 근근이 살아가던 허삼관은 마을에서도 소문난 미인 허옥란(하지원)을 아내로 삼기 위해 자신의 피를 팔아 번 돈으로 허옥란의 아버지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한다. 마침내 결혼한 허삼관과 허옥란은 눈에 넣어도 하나도 아프지 않을 세 아들을 낳고 소박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허삼관'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테마는 바로 피다. 허삼관은 피 때문에 웃고 운다. 피를 팔아 만든 가족으로 행복을 느끼지만, 자신의 가족 사이에 '더러운 피'가 섞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그 행복은 산산조각난다. 가장 믿음직스러웠던 첫째 아들 일락(남다름)이 허옥란이 과거에 만난 남자 하소용의 아들일지 모른다는 의심은 지독한 순혈주의자인 허삼관의 속마음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아버지보다는 철부지에 가까운 허삼관의 모습은 어른스러운 일락의 모습과 대비되며 '웃픈(웃기고 슬픈)' 감정을 전한다.
영화의 원작인 중국 소설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는 국공합작과 문화대혁명 등 중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주요 배경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배경이 중국에서 한국으로 바뀜으로 인해 원작이 지닌 역사적인 맥락까지는 담아내지 못한다. 원작보다 가족 이야기가 부각된 것 또한 각색 과정에서 어쩔 수 없었던 선택처럼 보인다.
연출 데뷔작인 '롤러코스터'에서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췄던 하정우 감독은 두 번째 연출작인 '허삼관'에서 보다 안정적인 연출을 보여주는데 신경을 쓴다. 시작부터 끝까지 매끄러운 영화 구성에서 그런 변화를 엿볼 수 있다. 다만 웃음이든 눈물이든 제대로 된 '한 방'이 없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12세 이상 관람가. 1월 14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