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신드롬에 직종·시공 초월한 후속작 이어질듯
"'미생'을 보면 화면이 회색빛입니다. 웃음 코드도 없고 안타까워할 일도 없죠. 그냥 눈을 뗄 수가 없어요. 엔딩 크레딧과 함께 OST가 흘러나오면 깊은 한숨과 함께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지난 주말에 만난 직장인 이모 씨(30·가명)는 '미생'에 공감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실제 국내 굴지의 상사에서 6년간 재직하다 얼마전 퇴직했다. 현재는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지인을 돕고 있다.
'런닝맨'출연진./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 제공
◆ '직장인'코드, 드라마·예능 경계 없이 점령
지금 방송가는 직장인 열풍이다. 샐러리맨의 삶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이 드라마와 예능을 넘나들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tvN 드라마 '미생'은 종영을 한 주 남긴 상황에서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그동안 부하 직원과 상사의 갈등, 비정규 계약직의 애환, 직장 내 성차별, 불합리한 조직문화 등을 사실적으로 풀어내며 직장인의 공감을 이끌었다.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6일 방송분은 평균 시청률 7.4%, 최고 시청률 8.6%를 기록했다. 이는 '미생' 자체최고 시청률로이자 케이블·위성·IPTV 통합 1위의 성적이다.
'미생'의 인기로 직장인의 이야기를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들도 재조명 받고 있다. KBS2 '개그콘서트' 속 코너인 '렛잇비'는 지난 6월부터 직장인의 애환을 노래하며 코너 시청률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tvN 예능 프로그램 '오늘부터 출근'도 지난 9월부터 밀착형 직장 관찰 프로그램으로 시동을 걸어 시즌3까지 순항 중이다. 지난달 30일 방송된 SBS '일요일이좋다-런닝맨'은 '샐러리맨 슈퍼레이스' 편을 방송했다. '출근하기 미션' 등으로 직장인의 고된 출근길을 담아 공감을 자아냈다.
◆직종과 시공간 초월…공감·위로는 계속된다
방송가의 직장인 열풍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다만 직종의 영역과 범위가 넓어지고 시공간을 초월한 공감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프로그램 포맷도 다양한 변화가 예상된다.
온스타일의 '슈퍼컴퍼니'는 차세대 디자이너를 선발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기존과 달리 탈락 제도를 없애며 '오피스 리얼리티'를 강조했다. 이우철 PD는 "디자이너 친구들이 진짜 회사에 들어가서 겪는 리얼리티를 만들고 싶었다"며 "신입사원으로서 벌어지는 상황, 그리고 회사에 입사해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12일 첫 방송을 앞둔 JTBC의 사극 '하녀들'은 조선 시대 노비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노비의 이야기이자 직장인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조현탁 PD는 "노비의 삶은 실제로 샐러리맨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해진 신분, 정해진 일과에 쳇바퀴 도는 삶, 그 사이에서 운명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이들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처럼 직장인의 이야기를 다루는 콘텐츠가 사랑 받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그만큼 직장인의 삶이 방송을 통해 조명받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우리 주변의 친근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미생'의 이재문 PD는 "자극적인 소재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직장생활을 다룬 점이 주효했다"고 성공 요인을 밝히며 한가지 사례를 전했다.
"한 시청자는 새벽에 퇴근해서 집에 왔는데 아내가 울고 있었답니다. '미생' 재방송을 보며 울고 있던 아내는 남편이 술에 취하지 않으면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유를 알게 됐다며 미안해 하더라고 합니다. '15년 동안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드라마 하나에 이해하더라'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