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미생'의 윤태호 작가(가운데)가 2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2014 창조경제박람회' 특설무대에서 좌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드라마 '미생'의 기획제작을 맡고 있는 이재문PD(오른쪽)도 함께했다. 팝칼럼니스트 김태훈이 사회를 봤다./CJ E&M 제공
웹툰→드라마→출판물…"선순환 탔다"
이재문 PD "철저히 윤태호처럼"
"기존 드라마 공식 모두 다시 봐야할 때"
'미생' 열풍이다. 드라마·웹툰·만화 등 장르를 넘나들며 시청자와 독자를 홀리고 있다.
시청자들의 큰 호응 속에 방영중인 tvN 금토드라마 '미생'은 지난 22일 방송된 12화의 평균 시청률이 6.3%를, 최고 시청률은 7.8%를 찍었다. 케이블·위성·IPTV 통합 동시간대 1위 기록이다. 특히 30대 남성과 20~30대 여성 시청자의 경우는 지상파를 포함해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드라마 방송 기념으로 포털사이트에 연재했던 '특별판 5부작' 웹툰은 연재와 동시에 조회수 1위를 기록했다. 웹툰을 책으로 엮은 만화책 단행본 시리즈는 1년 동안 90만부를 판 데 그쳤으나 드라마 방송을 시작한 이후인 지난달 26일 100만부를 돌파했고 한 달 뒤인 지난 26일에는 판매량 200만 부수를 넘어섰다.
'미생' VOD 누적 판매액은 15억원에 육박하며 상승세도 가파르다. 지난 17일부터 23일까지 1주일 동안의 매출은 3억원에 달해 VOD 시장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지상파 대표 예능 프로그램보다도 약 4배 앞서는 수치다.
'미생'은 성인 남녀들이 주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직장인의 애환을 사실감 있게 그려내며 그야말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대중 앞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웹툰 '미생'의 윤태호 작가는 2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2014 창조경제박람회' 특설무대에서 좌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드라마 '미생'의 기획·제작을 맡고 있는 이재문 PD도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둘은 '미생'이라는 콘텐츠가 갖는 의미를 설명했다. 윤태호 작가는 "소비자들의 수준이 높아졌다. 웹툰은 10대만의 시장이라는 틀을 벗고 모바일에서 아저씨들의 '클릭'을 이끌고 있다. 웹툰 시장이 장년층으로 확대된 것이다. 그리고 이번 드라마를 통해 여성들의 유입도 이끌었다. 이는 다시 출판물의 성공으로 돌아가 선순환을 타고 있다"며 "장르의 변환이 쉽게 이뤄지고 있다. 소비자는 이런 변화에 준비가 돼 있다"고 입을 열었다.
윤태호 작가는 웹툰 '미생'을 만드는 데 4년 7개월이라는 시간을 투자했다. 그는 웹툰이 웹툰으로써 정체성을 가지고 완성도가 높아야 독자를 끌 수 있다고 조언했다. 윤태호 작가는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에 신경을 썼고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깊이 있게 생각했다"며 "한국 독자만을 생각하기보다는 인간 자체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세계인이라는 생각과 그에 걸맞는 작품을 구상하고 지구인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나와야 한다. 또 그런 문화를 원한다"고 말했다.
드라마 '미생'은 기존 드라마의 제작 질서와 관행을 따르지 않고서도 성공을 거둔 사례로 꼽힌다. 자극적인 소재와 멜로 중심의 진부함을 과감히 벗어내고도 시청자 호응을 이끌고 있다.
이재문 PD는 "한국 드라마에 새로운 이야기를 내놓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한두 명의 주인공 중심이 아닌 대기업의 이야기, 한국에 가장 많은 회사원을 그리고 싶었다"며 "처음에는 각색 과정에서 웹툰의 의도를 상실할까봐 반대했다. 그러다 확신이 든 것은 철저한 공감 때문이었다"고 전했다.
이 PD는 이어 "철저히 윤태호처럼 하려고 했다. 무역상사 직원, 바둑기사를 찾아 다니며 취재했고 많은 충격을 받았다. 취재 과정에서 '윤태호도 여기서는 막혔을텐데'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며 "저희 작가는 실제 상사에 인턴으로 출근했다. 현장 공기를 알고 나니 대본이 달라졌다. 전문용어가 들어가야 할 타이밍도 적재적소였다"고 드라마 준비 과정을 설명했다.
'미생'은 PPL(간접광고) 하나까지도 사무실 모습 그대로를 재현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 PD는 "기존 드라마들이 감정에 호소했다면 '미생'은 촘촘한 디테일의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과 다른 재미 요소를 찾았고 거기에서 시청자들이 신선함을 느끼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내 드라마 전반이 위기라는 점도 강조했다. '지상파 드라마는 식상하다'는 지적에 이재문 PD는 "한국 드라마 전반의 위기라 생각한다. 만약 '미생'이 지상파 시스템 안에서 우리처럼 오랜 기간 준비했다면 더 잘 만들어졌을 것이다. 웹툰이 주목받는 것은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 소재를 찾지 못한다는 것"이라며 "시청자 기호를 알 수 없으니 검증된 것을 다루겠다는 의도인데 기존 드라마 작가가 고수했던 스킬이나 시청률을 올리는 공식, 협업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 등을 다시 한 번 짚어야 할 때다. '이야기꾼'은 많지만 모두가 빨리 가려고만 한다"며 국내 드라마 제작 현실을 꼬집었다.
현재 윤태호 작가는 '미생' 시즌2를 제작 중이다. 윤 작가는 "올해 가을에 내기로 했는데 내년 3월로 연기됐다. 또 연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재문 PD는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시즌2도 드라마로 하고 싶다"며 드라마 '미생2'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