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군은 강남의 술집에서 근무 중이다. 소위 일류대학의 인문계열에 재학 중이고, 군 제대 후 등록금 마련을 위해 웨이터를 시작했다. 술 취한 손님들의 시중을 드는 게 고단했지만, 고정 급여만큼이나 쥐어지는 팁에 재미를 붙였다. 몇 개월 일하면 1년치 등록금과 교재비, 최소한의 용돈은 마련할 수 있다는 계산에 열심히 일했다. 4개월 만에 목표했던 돈을 만졌고, 학기 시작이 남아서 2개월 더 하기로 했다. 2년 만에 웨이터 5명을 거느린 상무가 됐다. 월수입은 시작 때보다 5배에 달했다.
B군은 도통 학업에 취미가 없었다. 학교 안에서 맴돌다 PC방으로 놀이터 삼아 세월을 보냈다. PC방 건물 1층에 있는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발렛 주차를 맡게 됐다. 아르바이트 삼아 시작한 지 석 달 만에 인근 가게 6개의 발렛 서비스를 도맡았다. 가게에게는 매월 일정액의 관리비를 받았고, 고객에게는 2000원의 요금을 수령했다. 1년 만에 직원 두 명을 둔 발렛 전문서비스 사업자가 됐다. 부모님께 등록금을 받는 대신 가끔 외식을 시켜드리거나 용돈을 드리기도 한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공공기관의 고용세습에 관한 지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은퇴 직원 자녀에 대한 취업 특혜는 물론 산하기관이나 지역 조합에 취직시키는 경우가 허다하게 있었다. 소위 현대판 음서제로 불리는 행위였다. 고위 공무원 혹은 은퇴자의 자녀에게 가산점을 주거나 비정규직으로 채용 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방법이 드러났다. 더 충격적인 것은 채용뿐만 아니라 승진이나 보직 발령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었다. 어느 기자의 표현대로 부모가 스펙인 셈이다.
사회는 청년들에게 성실하게 공부를 하거나 신념을 갖고 꿈을 만들어 가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가르치는 중이다. 돈을 잘 버는 방법을 가르치지는 않고, 막 벌고 막 쓸 수 있는 길을 알려 준다. A군의 꿈은 300평 이상 규모의 술집을 내는 것이다. 그는 지금 도박 빚만 잔뜩 지고 있다. B군은 발렛서비스 가게를 100개까지 늘리는 게 목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업자와의 물리적 충돌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고 기꺼이 감수한다는 생각이다. 현대판 음서제로 취업한 이들은 두려운 게 없다. 선배든 상사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심지어 자기보다 아래 사람이라고 여기기까지 한다. 든든한 부모 덕분이다.
훌륭한 어른은 못 돼도 부끄러운 어른으로 살지는 말아야겠다. 그게 한 인간으로 숨 쉬는, 다음 세상이 유지되도록 해야 하는 최소한의 책임이 아닐까 싶다.
인터패션플래닝(www.ifp.co.kr)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