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으로 흥행 신기록 세운 김한민 감독
본능적 꿈틀거림으로 영화화
관객 소통으로 목표 달성
차기작 미정…'한산' '노량' 구상 중
"김한민이라는 사람이 이순신 장군에 대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게 가장 큰 천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위험했던 촬영을 사고 없이 무사히 끝낸 것, 그리고 많은 관객이 영화를 봐준 것도 천행이고요."
1000만 관객은 영화계에서 꿈의 숫자였다. 그러나 지난달 30일 개봉한 '명량'(감독 김한민)은 개봉 12일 만에 1000만 관객을 가뿐히 넘겼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흥행 열기다. 18일까지 누적 관객수 1488만6476명을 기록해 1500만 관객 돌파도 확실시 되고 있다.
18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한민(44) 감독은 '명량'의 흥행 성적에 대해 "지금은 덤덤하다. 어떤 상황에 닥치면 그것을 무덤덤하게 보려고 하는 감독병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에서 분석하고 있는 것처럼 이순신 장군이 보여준 리더십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가 전투 신과 어우러져 관객들과 소통한 결과인 것 같다"고 흥행 요인을 분석했다.
김한민 감독이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게 된 건 운명과도 같았다. 전라좌수영이 있었던 전라도 순천이 고향인 그는 어릴 때부터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영화 일을 시작하면서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영화로 다루고 싶다는 "본능적인 꿈틀거림"을 가졌다.
고답적인 전기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나 지금 시대와 소통할 수 있는 이야기로 이순신 장군을 그리고 싶었다. 이를 위해 김한민 감독이 주목한 것은 바로 '해전'이었다.
그 중 명량해전을 영화 소재로 삼은 것은 "본능적인 선택"이었다. "명량해전이야 말로 이순신 장군의 정신적인 엑기스를 잘 보여주는 전쟁이에요. 생사에 연연하지 않고 보여준 자기 헌신과 희생 같은 장군님의 정신이 전쟁을 통해 백성들에게 감화돼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 전쟁이니까요."
그 말대로 영화 속 61분 분량의 해전 신은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잘 보여준다.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선에 맞서 싸워 기적적인 승리를 이끌어내는 과정,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이순신 장군의 희생정신이 관객들에게 강한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김한민 감독도 "이순신 장군을 관객과 소통시켰다는 점에서 영화의 가장 본질적인 목표는 달성했다고 본다"고 밝혔다.
영화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는 반응도 전혀 없지는 않다. 그 중 하나는 고증과 관련한 의문이다. 특히 전쟁의 지옥도를 보여주는 백병전 장면에 대해서는 실제 역사와는 다르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대해 김한민 감독은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 장군의 배는 아니지만 안위가 탄 배에서 백병전이 있었다고 나온다. 영화 속 장면은 이순신 장군의 헌신과 자기희생적인 면모가 민초들에게 감화된다는 영화의 테마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가져온 것이다. 주제적인 맥락에서 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고증에 대한 이야기들도 결국에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관심인 것 같아 좋다"고 덧붙였다.
이순신 장군을 제외한 다른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평면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병사 역으로 나오는 고경표는 대사 한 마디 없이 등장해 의아함을 자아내기도 했다.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의 내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 부분은 나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고 아쉬움을 인정했다. 다만 해외 관객들을 위해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도 더한 확장판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혀 기대감을 갖게 했다.
김한민 감독은 '명량'에 이어 한산도 전투와 노량해전을 다룬 또 다른 이순신 장군의 영화를 기획 중이다. 그러나 차기작이 바로 '한산'이 될지는 미지수다. 독립투사에 대한 이야기도 그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 중 하나다. 김한민 감독은 "하고 싶은 작품들에 대한 생각이 많아 교통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며 웃음을 보였다. 다만 한산도 전투와 노량해전에 대한 언급은 앞으로 이어질 '이순신 장군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산해전은 임진왜란에서 첫 승전보를 올린 조선 수군의 자긍심을 보여주는 전투에요. 무엇보다 유명한 학익진과 그 화룡정점인 거북선이 등장하죠. 노량해전은 임진왜란 해전 사상 가장 격렬하게 싸운 전쟁이에요. 장군님이 전사한 전쟁인 만큼 영화화가 된다면 관객들도 펑펑 울지 않을까 싶어요."
사진/한제훈(라운드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