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프트웨어 기업이 세계 1위에 오르는 기념비적인 일이 벌어졌다.
삼성전자를 필두로 한 TV, 휴대전화와 같은 하드웨어 기업이 종종 글로벌 챔피언 자리에 오른 적은 있지만 토종 소프트웨어 회사가 이같은 영예를 차지한 것은 처음이다.
국내 1위 자동번역 솔루션 전문기업 씨에스엘아이(CSLi)는 글로벌 1위 자동번역 솔루션 개발사인 프랑스의 시스트란(SYSTRAN)을 인수하고 사명을 '시스트란 인터내셔널'로 변경했다고 27일 밝혔다.
파리에 본사를 둔 시스트란은 1968년에 설립된 세계 최대 자동번역 솔루션 개발 기업으로 업계 최다인 총 89개 언어를 번역하고 있다.
구글이 60개 언어, 마이크로소프트가 20개 언어를 지원하는 것과 비교할 때 경쟁 우위에 있다. 미국 국방부, 유럽연합(EU) 등 정부기관은 물론 다양한 기업에 번역 소프트웨어를 공급하고 있다.
B2B 위주의 영업을 하고 있지만 일반 소비자에게도 번역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삼성 '갤럭시S4' 이상 모델에 탑재된 'S번역기'에 시스트란의 기술이 적용됐고, 갤럭시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모바일 메신저 '챗온' 역시 동일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
S번역기나 챗온에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을 입력하면 한글로 번역이 되며 반대의 경우에도 해당 언어로 변환된다.
결과적으로는 CSLi가 프랑스 기업을 인수해 글로벌 1위에 오른 모양새이지만 CSLi의 원천 기술은 이러한 아쉬움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시스트란, 구글, MS의 번역과 달리 CSLi는 음성 번역을 지원한다. 즉 시스트란이 구축한 텍스트 번역 기반에 자체 음성 번역 기능을 추가해 기대 이상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최근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미국 증시 상장 돌입으로 투자금의 3000배를 회수한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시스트란 인터내셔널의 주요 투자자로 참여한 대목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소프트뱅크 벤처스 코리아는 CSLi가 시스트란을 인수하는 데 드는 비용 550억원 가운데 18%(약 100억원)를 거들었다. 알리바바 대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는 '돈 되는' 기술을 알아보는 데 일가견이 있다.
음성 번역 소프트웨어를 최근 가장 '핫'한 웨어러블 기기에 적용할 경우 파급력은 엄청날 수 있다.
구글글래스와 같은 웨어러블 안경을 예로 들면 영어를 기반으로 한 제품이 대부분이다. 이럴 때 한국, 일본, 중국, 브라질과 같은 비영어권에 수출을 하려면 현지 언어로 바꿔줘야 한다.
그런데 현지화 작업에는 비용은 물론이고 시간, 인원 소모가 많다. 하지만 번역 소프트웨어의 도움을 받으면 현지화 과정을 사실상 생략할 수 있다.
KAIST 정보미디어 경영대학원 허순영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인구이동이 늘어나면서 모든 언어의 자동 통번역 수요가 급속하게 늘고 있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기기, 기기와 기기간 지능형 협업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자동번역 분야는 최종 언어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술"이라며 "시스트란 인수는 우리 기업이 전세계를 상대로 영향력을 갖는 기술을 확보하는 계기이며 국내 IT 산업 역사에 획을 긋는 사건"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