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천호동에 위치한 미로 아르테에서 기자가 재단에 앞서 실제 책과 패턴을 비교해 보고 있다. / 서승희 기자
이번 시간에는 베지터블 가죽을 활용한 책커버 만들기다.
영화 속에서 우연히 만난 고풍스러운 느낌의 책커버를 떠올리며 피천득 시인의 수필집 '인연'을 비롯해 미로 아르테에 있는 책들을 살펴본다. 관건은 책커버의 크기를 결정하는 일이다. 책 크기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지훈 저자의 '혼창통'을 기준으로 삼는다. 책의 둘레를 측정한 후 가로,세로,두께의 각각 5㎜를 늘린 크기의 직사각형 패턴을 완성한다.
그 후 익숙한 작업을 이어간다. 가죽 위에 패턴을 놓고 재단한다. 이어 크리저로 그리프가 통과할 기준선을 만들고 망치와 그리프로 바늘이 통과할 지점을 만든다.
이날 수업에서 가장 인상적였던 것은 책 둘레의 3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실길이로 바느질을 한 거다. 적당한 실길이로 군데군데 마무리 매듭이 보이게 할 수도 있었지만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기대하며 약간의 번거로움을 감수하기로 했다. 밀랍을 꼼꼼이 칠했음에도 불구하고 천연사여서 그런지 중간에 2번이나 실이 끊어졌다. 예상치 못한 실 손실로 대여섯 구멍을 남기고 더 이상 바늘질이 어려운 실길이가 됐다. 결국 강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강사는 먼저 바늘과 실을 분리한 후 바늘을 먼저 통과시켰다. 이어 실을 연결해 매듭까지 마무리 지었다. 이렇듯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은 초보자와 숙련자를 가른다.
집으로 돌아 가는 길 반나절 넘게 작업을 했더니 눈도 침침하고 어깨도 결린다. 지하철 안을 둘러본다. 다들 스마트폰을 손에 든 채 무언가에 열중한 모습이다. 유럽에서는 최상급 가죽으로 만든 책커버를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다시 아들에게 물려준다는 데. 언젠가 그런 훈훈한 풍경이 스마트폰의 익숙함만큼 친숙한 모습으로 다가오기를 소박하게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