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청약제를 놓고 일각에서는 '정부판 지주택(지역주택조합)'이라 부른다. 주택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여건도 마무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모집했다가 사업이 정체, 지연되는 것은 물론 조합파산 등으로 피해자를 양산한다는 점에서 지주택이나 사전청약이 다를 바가 없다는 조롱이다.
사전청약이라는 어설픈 정책이 모두를 '패자'로 만들었다.
내 집 마련을 위해 2~3년을 기다린 사전청약 당첨자들은 다시 '청약난민' 신세가 됐다.
공급 확대 속도전을 펼치겠다더니 정부는 본청약 지연과 취소로 국민들의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민간 사전청약을 진행했던 시행사 역시 분양가 상한제 등 규제에 묶어 사업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수백억원에 달하는 계약금은 그대로 날려버렸다.
정부가 뒤늦게 사전청약을 중단하고 대책을 내놨지만 피해자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 피해커진 민간 사전청약
본청약만을 기다리던 사전청약 당첨자들은 사업 취소나 분양가 상승에 따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지금의 청약 시스템에서 2~3년이란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기회다. 혼인 기간이 지나거나 소득이 높아지면서 특별공급 청약 자격이 없어지기도 했고, 당초 요구된 거주기간을 채우고 타지로 이사를 간 경우 다른 청약 기회도 잡을 수도 없다. 기약없이 미뤄지는 일정에 전월세 계획도 짜기 힘들다.
특히 민간 사전청약 당첨자의 피해는 더 크다. 공공분양의 경우 당첨 지위를 유지하면서 다른 본청약에 지원할 수 있었지만 민간 사전청약은 지원 자체를 할 수 없었다. 입주 지연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정부의 정책도 공공 사전청약 당첨자들만 해당한다.
한 피해자는 대책을 촉구하는 국민청원을 통해 "정부는 올해 1월부터 민간 사전청약 취소로 발생한 피해에 대해 민간 시행사와 개인 간의 계약 문제라며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며 "사업 취소로 LH는 토지 계약금 이득을 보고 공공택지를 회수했지만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전청약 당첨자는 당첨 지위를 박탈당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뒤늦게 구제책을 마련하고 나섰지만 피해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관련 규정을 바꿔 민간 사전청약 당첨자의 중복 청약을 허용하고, 사업 취소로 피해를 본 이들의 청약통장 가입 이력과 납입 횟수 등은 복구해주기로 했다. 그러나 특별공급 등 자격 자체를 상실한 경우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 "구제책은 당첨자 지위 유지뿐"
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사전청약 취소 단지에 대해선 당첨자 지위 승계를, 분양가 상승 단지의 경우 인상률 제한을 요구하고 있다.
사전청약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는 성명문을 통해 "피해자에 대한 구제책은 오로지 당첨자 지위 유지 및 승계 뿐"이라며 "국토교통부 및 행정기관은 사전청약 '지위승계'에 대한 구체적인 시기 및 방법과 절차 등을 조속히 구체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피해자들은 취소된 사업지의 사업 재개 시 사전 당첨자 지위를 유지하고 승계할 수 있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토부가 전향적으로 검토할 의향이 있나"라는 질의에 "공공청약 프로세스에 들어와서 청약을 받은 거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 공공에서 신뢰 보호의 차원에서 그런 입장을 가지고서 검토를 해보도록 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실제 당첨자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지는 미지수다.
제일건설이 사전청약을 취소한 영종국제도시 A16블록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지원을 받아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을 짓는 것으로 진행되고 있다.
제일건설 관계자는 "당첨자 지위를 유지해 달라는 요구는 알고 있지만 시행사나 시공사에는 권한이 없기 때문에 HUG나 지자체, 국토부 승인을 받아봐야 할 사안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피해자들은 국토부와 LH를 대상으로 한 헌법소원도 추진한다. 법적 근거로는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국토교통부령 제746호) ▲주택법 제35조(사전청약에 따른 주택 공급) ▲행정법상 신의성실 원칙 및 신뢰 보호 ▲민법 제103조(반사회적 법률행위) 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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