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진 메트로신문 기자
아이와 함께 들른 대형 서점 앞에서 한 여성이 내 손목을 잡았다. "내년부터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가 종이책 대신 수업에 쓰이는 거 아시죠. 미리 준비하셔야 해요". 한 사교육업체 디지털 학습기기 영업사원이었다.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디지털교육 마케팅 시장까지 편승해 학부모를 흔들고 있다.
내년부터 초·중·고등학교 수업 현장에 순차적으로 디지털교과서가 도입된다. 내년 초등 3학년이 되는 내 아이는 첫 사용자가 된다. 첫해 초등학교 3~4학년과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의 수학·영어·정보 교과부터 시작해 2028년부터는 전 과목으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강조하는 디지털교과서의 핵심 키워드는 '맞춤형 수준별 학습'이다. 단순히 종이 교과서를 스캔해 디지털 기기로 옮긴 것을 넘어 학생과 맞춤형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학습 격차를 줄일 수 있다는 게 교육부 설명이다. 이를 위해 투입되는 재정은 1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학부모·교사는 물론, 전문가들의 우려는 크다. 고민정 국회 교육위원회 의원실이 초·중·고교생 자녀를 둔 전국 학부모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동의한다는 응답은 30%에 그쳤다. 교원을 상대로 한 다른 조사에서는 단 10%만이 찬성하면서 부정적 평가 비중이 훨씬 높았다.
'학습 효과성 의문'과 '디지털 기기 과몰입·중독 우려' 등이 이유로 꼽히는 가운데,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문해력'이다. 디지털교과서에 대해 '디지털 네이티브'로 꼽히는 학령기(초등) 아동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큰 이유다. 초등 시기는 평생 문해력을 결정짓는 시기로 꼽히기 때문이다.
디지털기기 사용이 문해력 저하 원인으로 꼽히며 주요 선진국들은 '특단'의 대책을 세우고 있다. 스웨덴 정부와 학계는 학생의 읽기 능력이 과거보다 떨어진 원인을 '디지털 기기 사용 증가'라고 진단하고, 6세 미만 아동에 대한 디지털 학습을 완전히 중단했다. 대신 각 학교에 비치할 도서를 사는 비용으로 지난해와 올해만 한화 1조5000억원이 넘는 재원을 지원했다. 프랑스는 지난 2018년부터 학교에 학생이 스마트폰을 가져오지 못하게 했고, 네덜란드는 올해부터 교실에서 스마트폰, 태블릿PC, 스마트워치까지 금지했다. 한국이 거꾸로 가는 셈이다.
디지털교과서를 국가가 추진하는 사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디지털 강국''학구열이 가장 높은 나라'에서 내딛는 선도적인 발걸음으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는다. 정부는 '이제껏 본적 없는 새로운 교과서가 찾아옵니다'라고 외치고 있지만, '디지털교과서'의 부작용을 간과해선 안 된다. 내 아이가 학교에서만큼은 연필 잡고 글 쓰면서 종이책으로 읽는 힘을 키웠으면 좋겠다.
/ 이현진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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