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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지역

[되살아난 서울] (157) 조선의 마지막 국모와 고종의 손자 잠든 '서울 영휘원과 숭인원'

지난 17일 오후 숭인원을 방문했다./ 김현정 기자

서울 동대문구에는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후궁인 순헌황귀비 엄씨가 잠든 '영휘원'과 영친왕의 첫째 아들인 이진 원손이 묻힌 '숭인원'이 자리해 있다. 영휘원과 숭인원의 묘역 규모는 5만5015㎡이며, 지난 1991년 사적으로 지정됐다.

 

당초 이곳에는 고종의 비인 명성황후 민씨의 능인 '홍릉'이 위치해 있었다. 명성황후의 묘는 1919년 고종이 승하한 뒤 경기도 양주군 미금면 금곡리(현 남양주시 금곡동)로 옮겨졌고, 영휘원과 숭인원의 주소명(동대문구 홍릉로90)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생후 8개월 만에 숨을 거둔 비운의 왕세손

 

17일 오후 숭인원을 찾았다./ 김현정 기자

지난 17일 오후 사적 제361호인 영휘원과 숭인원을 방문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에서 하차해 2번 출구로 나와 국립산림과학원 방향으로 약 1km(도보 15분 소요)를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매표소에서 1000원을 주고 표를 구매한 뒤 입장해 숭인원으로 향했다. 숭인원은 의민황태자(영친왕)와 의민황태자비 이씨(방자)의 첫째 아들인 이진의 무덤이다. 이진은 1921년 8월 18일 일본에서 태어났다. 순종은 '어떤 운명이나 역경 속에서도 밝고 행복하게 살라'는 의미를 담아 원손에게 '진(晋)'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1922년 4월 부모와 귀국한 이진은 일본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인 5월 10일 밤부터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고, 다음날 세상을 떴다. 순종 황제는 생후 8개월 만에 숨진 이진의 죽음을 슬퍼하며 후하게 장례를 치르도록 명했다. 조선시대에는 어린아이가 부모보다 먼저 사망하면 장례를 치르지 않는 풍습이 있었는데, 순종의 배려로 1922년 5월 17일 장례식을 거행했다.

 

숭인원 역시 순종 황제의 명으로 특별히 원으로 조성됐다. 원(園)은 왕의 사친과 왕세자, 왕세자빈, 황태자, 황태자비 등의 무덤을 일컫는 말이다. 숭인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붉은 기둥의 문이다. 홍살문 앞으로는 향로가 곧게 뻗어 있었다. 홍살문과 정자각을 잇는 향로는 제향 때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길로 사용된다. 이어 모습을 드러낸 건물은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정자각이다. 정전과 배위청으로 이뤄져 있으며, 그 모양이 '丁'자를 닮아 정자각으로 불린다.

 

이달 17일 오후 숭인원 비각을 둘러봤다./ 김현정 기자

정자각 우측엔 비각이 설치됐다. 무덤 주인의 행적을 기록한 표석엔 '원손 숭인원'이라는 글자가 새겨졌다. 안타깝게도 비석 뒷면은 비문이 갈려 나가 과거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알 수 없었다.

 

원손의 무덤을 가운데 두고 삼면으로 담장이 둘러졌으며, 봉분 주위에는 ▲석마(말의 형상을 조각한 돌) ▲장명등(어두운 사후 세계를 밝히는 석등) ▲문석인(관복을 입고 원의 주인을 보좌하는 인물상) ▲망주석(봉분 좌·우측에 설치된 한 쌍의 기둥) ▲혼유석(혼령이 노니는 곳) ▲석호(원을 수호하기 위해 봉분 주위에 배치하는 돌로 만든 호랑이) 등이 세워졌다.

 

◆조선의 마지막 국모 순헌황귀비 모신 '영휘원'

 

지난 17일 오후 시민들이 영휘원 일대를 둘러보고 있다./ 김현정 기자

숭인원을 둘러본 뒤 어정(임금에게 올릴 물을 긷는 우물)을 지나 영휘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덤의 주인은 순헌황귀비 엄씨다. 순헌황귀비는 광무 1년(1897)에 영친왕을 낳았고, 6년 뒤 황귀비로 책봉됐다. 신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 양정의숙과 진명 여학교, 숙명 여학교 설립을 지원했다.

 

영휘원과 숭인원은 비슷하면서도 달라 두 무덤의 차이를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묘역의 규모다. 영휘원이 숭인원보다 훨씬 컸다. 숭인원에는 정자각 앞으로 향로만 나 있지만, 영휘원의 홍살문 뒤로는 향로와 어로가 함께 만들어졌다.

 

17일 오후 영휘원 일대를 둘러봤다./ 김현정 기자

영휘원과 숭인원에는 홍살문, 정자각, 비각이 세워졌다. 숭인원에는 영휘원 원침에 둘러진 호석(둘레돌)과 석양(무덤 앞에 세운 돌로 만든 양 모양의 조각물)이 생략됐다.

 

영휘원 좌측에는 순헌황귀비의 재실이 마련됐다. 재실은 선대 봉사를 위해 제사 전에 모여 목욕재계하고 준비하는 의례용 건물이다. 실내화를 신고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둘러봤다. 마루 한켠을 차지한 검박한 1단짜리 나무 책꽂이에는 '왕릉 가는 길', '광릉 산림생태 조사 연구', '우리나라 전통 무늬 나전·화각' 등의 책들이 잔뜩 꽂혀 있었다. 그 앞에는 책 읽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작은 소반 하나가 놓였다.

 

17일 오후 순헌황귀비의 재실을 방문했다./ 김현정 기자

아쉽게도 볼거리는 이게 전부였다. 재실 내부는 물건 하나 없이 텅텅 비어 있었다. 한옥의 창호에 붙은 창호지에 구멍이 나 위에 한지를 덧바른 자국이 곳곳에 보이는 것과 누군가 벽 한 귀퉁이에 매직으로 적어 놓은 '14'라는 숫자 외에는 특기할 만한 것이 없었다.

 

영휘원과 숭인원의 관람 시간은 화~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매주 월요일은 정기 휴일이라 문을 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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