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기간 안돼 대출-채무조정도 안돼"
#. "지난달 현금서비스를 받아서 그런지, 1000만원 가까이 한도를 줄일 거라는 문자를 받았어요. 월 매출 1100만원에 순수익은 700만원 정도 되는데, 대출이 안 나오네요. 개인돈을 빌리는 게 나을까요?" (경기도 용인시 부실우려차주)
#. "지난달 중순부터 연체가 시작됐는데, 주변에서 새출발기금(채무조정제도)을 신청하려면 채무가 90일까지 연체돼 신용정보원에 연체내용이 등록돼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내년부터 한 건씩 원금상환일자가 다가오는데 2월까지 버텨야 합니다. 갈 길이 머네요." (서울 종로 채무조정신청예정자)
금리인상과 원자재 가격상승이 맞물리면서 한계에 몰린 자영업자가 늘고 있다. 은행들은 부실위험 때문에 대출 문턱을 높이고, 정부기관은 일정기간 연체해야 채무조정이 가능하다는 요건을 두고 있어, 일부 자영업자는 사금융으로 내몰리고 있다.
19일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지난 6월말 금융권 자영업자 대출잔액은 1051조1000억원으로, 지난해 말(963조8000억원)과 비교해 100조원가량 늘었다. 6월기준 자영업자 수는 558만명으로 자영업자 당 대출금액은 평균 1억8836만원이다.
◆금리·원자재값 상승…대출이자 12조8000억원↑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개인사업자대출과 가계대출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차주의 대출잔액은 876조6000억원, 개인사업자 대출만 갖고 있는 이들의 대출잔액은 174조5000억원이다. 자영업자 대출은 개인사업자대출과 신용대출 등 가계대출로 구성된다 . 은행권에서 받은 대출은 620조6000억원으로 59%를, 비은행권에서 받은 대출은 430조5000억원으로 41%를 차지했다.
문제는 기준금리가 올해 1월 1.25%에서 11월 3.25%까지 2%포인트(p)가량 오르면서 전체 자영업자의 연간 대출이자도 불어나게 됐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가 0.25%p 올라갈 때마다 전체 자영업자의 연간 대출이자부담이 1조6000억원씩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올 초보다 대출부담이 12조8000억원 증가한 셈이다.
여기에 원자재 가격도 상승했다. 생산자물가지수는 지난해 말 113.21에서 올해 10월 120.61로 나타났다. 농림수산품은 134.86으로 지난해 말(134.87)과 비슷했지만, 음식료품을 포함한 공산품이 같은 기간 115.46에서 123.95로, 서비스가 115.46에서 123.95로 급격히 올랐다.
경기도 수원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A씨는 "지난 11월까지는 월드컵, 행사 등이 겹치면서 장사가 좀 됐는데, 물가가 올라서인지 12월 들어서면서부터 연말 단체예약도 반토막으로 줄고 배달도 급격히 줄었다"고 말했다.
◆은행 문턱 높이고, 채무조정 현실반영 안돼
자영업자들이 버티기 위해선 유동성이 필요하지만 은행 문턱도 높아진 지 오래다.
대출행태서베이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은 올 4분기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태도지수를 -3으로 조정했다. 지수가 0보다 작으면 전 분기에 비해 대출태도를 더 강화하겠다고 응답한 은행이 완화하겠다고 응답한 은행보다 더 많다는 의미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개인사업자들은 도·소매업, 숙박업, 요식업에 주로 몰려 있는데, 경기 침체 가능성으로 해당 업종들은 전망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며 "은행들은 산업군별로도 한도 관리를 하는 만큼, 앞으로 보수적으로 접근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무조정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 신청도 어렵다. 앞서 한국자산관리공사는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채무조정프로그램을 마련했다. 3개월 이상 연체한 '부실차주'와 3개월 미만 연체한 '부실우려차주'가 대상이다.
다만 부실차주와 부실우려차주의 채무조정 범위가 달라 3개월 이상 연체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연체가 3개월 이상 된 부실차주는 원금의 60~80%를 감면받는 반면 연체가 3개월 미만인 부실우려차주는 원금조정 없이 이자감면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서 한 자영업자는 "연체가 3개월 미만 발생해 부실우려차주로 갔다가, 더 어려워지면 부실차주로 갈수도 있지만, 신용정보원에 연체정보가 미등록 돼 있는 경우 확인이 안된다고 하는 경우가 많아 3개월 연체를 하고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말 새출발기금 신청자수는 1만1761명으로 채무액은 1조7489억원이다. 새출발기금의 지원규모는 30조원으로, 출시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5.8% 수준에 그친다.
아울러 기존에 폐업한 자영업자의 경우 새출발기금을 신청하더라도, 이미 1금융권의 채권이 대부업에 팔려 지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자영업자는 "대부업체에서 대출받은 것도 아니고, 채권이 팔려서 대부업으로 넘어간 것인 데도 지원을 안해준다"며 "현실 반영이 안돼 개인워크아웃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는 "최초 새출발기금을 마련할 당시 대부업권까지 지원하려 했으나, 최종적으로 협약을 체결하는 단계에서 대부업이 빠져 지원이 어렵게 됐다"며 "아직까지 시장상황이 좋아지지 않았고, 내년 대출만기 연장·이자상환 유예조치도 종료되기 때문에 지원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꾸준히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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