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친구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간편조리세트를 하나 주문했다가 기분 상했던 일화를 들려줬다. 약 일주일 전, 그는 집 앞에 택배로 배송된 밀키트를 조리해 저녁 식사로 먹었다. 약간 신맛이 나길래 곱창전골이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넘어갔는데 다음날 가족들 모두 배탈이 나 온종일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며 생고생을 해야 했다고.
쇼핑몰 대표 번호로 전화를 걸어 상한 음식을 보내면 어떻게 하느냐고 따져 물었더니 밀키트 값을 적립금으로 돌려주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얼마 후 적립된 금액을 확인해보니 3000원이 들어와 있었다. 업체에서 그가 곱창전골 밀키트 값으로 지불한 3만원의 10분의 1을 돌려준 것이다.
친구는 적립금 액수를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고 했다. 판매자가 면전에 3000원을 던지며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하는 것 같았다고.
최근 이와 비슷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달 6일 서울시청에서 기자설명회를 열고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의료 확충 계획'을 발표했다. 오는 2026년까지 6120억원을 들여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공공의료 서비스를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뭐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꽤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향후 5년간 서울시가 투자하겠다는 돈의 약 70%를 의료 인프라가 풍족한 동남권에 몰빵하는 불평등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시는 "공공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동남권에 양질의 진료를 제공하는 종합병원을 신설하겠다"고 했다. 서울시가 4000억원을 쏟아부어 서울형 공공병원을 건립하는 '서초구'에는 이미 서울시 어린이들의 건강 안전망이자 국내 유일의 장애 어린이 재활 전문 공공병원인 '서울시립 어린이병원'이 들어서 있다.
6·1지방선거에 출마했던 조성주 전 마포구청장 후보는 오 시장이 서울형 공공병원 건립 부지로 제시한 서초구 원지동은 전문가들과 연구 검토 결과에서 공공병원을 설립하기에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원지동 부지 인근 30분 거리 내에 이른바 빅(BIG)5라고 불리는 대형병원인 서울성모병원(1356병상), 강남세브란스병원(814병상), 삼성서울병원(1989병상), 분당서울대병원(1324병상)이 인접해 있어 의료 인프라가 과잉된 상태"라고 했다.
서울시사회복지협의회가 작년 공개한 '서울시 맞춤형 의료상황지도' 자료에 따르면 작년 2월 기준 서울시 의료인 수는 14만7388명으로, 상당수 인력이 동남권에 포진해 있다.
동남권에 속한 서초구의 의사 수는 2145명, 간호사 수는 3745명, 간호조무사 수는 2374명, 약사 수는 489명, 치과의사 수는 502명, 한의사 수는 371명이다. 강남구는 의사 5318명, 간호사 7190명, 간호조무사 5741명, 약사 917명, 치과의사 894명, 한의사 615명을, 송파구는 의사 2732명, 간호사 5733명, 간호조무사 2345명, 약사 735명, 치과의사 451명, 한의사 342명을, 강동구는 의사 1483명, 간호사 2924명, 간호조무사 1779명, 약사 478명, 치과의사 384명, 한의사 304명을 보유하는 등 풍부한 인력풀을 갖춘 상태다. 반면, 서남권은 보건의료 인력이 불충분하다. 대표적으로 금천구의 경우 의사 335명, 간호사 546명, 간호조무사 883명, 약사 166명, 치과의사 133명, 한의사는 94명뿐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오 시장은 공공의료 확충 예산의 65%인 4000억원을 동남권에, 15%인 915억원을 서남권에 투자하겠다고 한다. 4선 서울시장이 내세운 시정 철학은 '약자와의 동행'인데, 서울시가 투자하는 돈의 흐름은 말과 행동이 영 딴판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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