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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석유화학/에너지

경윳값 14년 만에 휘발유 앞질러…자영업자에 큰 타격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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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새벽 서울 종로구의 한 주요소 가격 알림판에 경유가 휘발유보다 비싸게 표시되고 있다. /허정윤 기자

14년 만에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추월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로 생긴 수급 불균형에 세계에 미친 영향이 국내에서는 휘발유 가격 역전 현상으로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11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 기준 전국 주유소 경유 평균 판매가격은 L(리터)당 1946.65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 1945.88원보다 0.77원 더 높은 수치다. 오름폭도 경유가 휘발유보다 더 컸다. 휘발유 가격은 전날보다 2.09원 오른 반면, 경유는 5.19원 오르면서 전국 평균 가격이 역전됐다. 일찌감치 지역에 따라 '가격 역전'이 일어난 곳도 있었지만, 국내에서 전국 기준으로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넘어선 것은 2008년 6월 이후 약 14년 만에 일어난 일이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예측된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여파가 불러온 '국내 휘발유-경유 가격 역전'

 

이러한 경유 가격의 상승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여파가 유럽을 비롯해 세계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세계 3위 산유국이자 석유제품 수출국으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특히 러시아산 원유 소비량이 많은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경유 재고 부족 사태가 일어나 석유제품 수급에 영향을 주고 있다. 더군다나 유럽은 전체 경유 수입의 60%가량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는 SK이노베이션·에스오일·현대오일뱅크·GS칼텍스 등 국내 대표 정유 4사로 꼽히는 곳들 모두가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는 정도가 현저하게 작기 때문에 러시아산 원유를 수급 받지 못해 겪는 타격은 거의 없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에쓰오일은 사우디산 원유로만 전량 수입하기 때문에 러시아 원유 수급 문제로 직접적으로 겪는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나머지 정유사들의 입장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상황과 상관없이 러시아산 원유를 원유 거래처에서 특별한 수급 문제가 일어나지 않고서야 거의 거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러시아산 원유 수입이 적은 이유는 러시아의 지정학적 특징과 인프라가 국내 시장과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러시아산 원유는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데 이를 국내까지 이어주는 원유 운송용 파이프라인이 없을뿐더러, 그나마 가까운 지역이라고 볼 수 있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도 해당 파이프라인이 없는 게 현실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결국 운송 측면에서도 중동을 비롯한 다른 지역의 원유를 대형 원유 수송선으로 옮기는 편이 이득"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적 경유 오름세, 국내 특성과 맞물려 역전현상 발생…소비자 부담↑

 

문제는 자체 정유시설이 적은 유럽이 시장가를 올리며 국내 시장에 경윳값 오름세가 잡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은 자체 정유시설이 적은 탓에 러시아에서 경유를 수입해 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각국이 경유 수입처를 더욱 다변화하다 보니 시장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이다.

 

이렇듯 국제 경유 수요가 큰 폭으로 확대되자 휘발유보다 경유 가격이 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특히나 유럽의 경우는 디젤차량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유럽은 경유 순수입국으로 러시아산 경유 수입 물량은 2019년 기준 약 2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러시아 제재 상황이 풀리지 않는 이상 이 같은 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응해 정부도 이달 1일부터 유류세 인하율을 20%에서 30%로 확대했지만 이 같은 조치에도 국내 경유 가격 상승세를 잡진 못했다. 국제 석유 시장에서는 경유의 쓰임과 유통이 더 많아 경유가 휘발유보다 가격이 높게 형성되지만, 국내는 상황이 다르다. 통상 국내 주유소 경유 판매 가격은 휘발유보다 L당 200원가량 저렴하게 책정돼 있다. 이유는 경유 유류세가 휘발유보다 낮기 때문이다. 결국 최근 정부의 유류세 인하 조치가 경유 가격 역전을 더욱 가속화한 원인으로 작용한 셈이다.

 

이런 역전 현상은 대형차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경유는 화물 차량이나 버스, 트럭, 택배용 차량 등 상업용 차량과 굴착기, 레미콘 등 건설장비 연료로 들어가기 때문에 해당 차량 운전자 등에게 부담이 가중되는 구조다.

 

정부가 대중교통·물류 업계의 부담 경감을 위해 영업용 화물차, 버스, 연안 화물선 등에 대해 경유 유가연동 보조금을 이달부터 3개월간 한시적으로 지급하고 있다. 기준가격(L당 1850원) 초과분의 50%를 지원하되 유가보조금 제도에 따라 화물업계 등이 실제로 부담하는 유류세 분인 L당 183.2원을 최대 지원 한도로 정했다. 하지만 이러한 역전현상이 이어진다면 경유 소비자들의 부담을 줄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유사에서 임의로 가격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싱가포르 시장에서 거래되는 '국제 석유제품 가격(MOPS)'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며 "경유 가격 안정화가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개별 주유소에서도 유류세 인하분을 즉시 판매 가격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 이전 인하폭은 20%를 적용한 재고를 모두 판매한 뒤 유류세 인하 30%를 적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정부는 유류세 인하분이 최대한 빨리 반영될 수 있도록 정유소 운영시간과 배송시간을 주말 포함 최대 24시간까지 연장하고, 주유소 배정물량을 분할 공급하는 등 전국 모든 주유소에 공급되도록 할 방침이다.

 

한편, 정유업계가 유류세 추가 인하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시민단체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이 유류세 추가 인하 효과를 분석한 결과 지난 8일 기준 전국 주유소 중 휘발윳값과 경윳값을 추가 인하분(각각 77원·38원)만큼 내린 곳은 각 16%와 12%에 그쳤다. 반면 이 기간 전국 주유소의 44%는 경윳값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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