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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장소가 아닌 마음에 남는 '공공미술'

동시대 공공미술은 미술인 개인의 예술적 성과를 진열하지 않는다. 예술가는 단순한 오브제를 생산하는 이가 아니라 공공의 주체인 주민들과 함께 시대의 이슈를 공론화하는 발굴자이자 해석자로 위치한다. 시민들 또한 관객이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자가 된다. 공공미술의 목표도 환경미화를 넘어 새로운 모더니티 구축에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공공미술이란 대개 전국 공공장소와 건축물 앞에 우후죽순 들어선 조형물을 가리킨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공미술 1단계인 '건축 속의 미술'과 2단계인 '공공장소 속의 미술'이다. 가장 낮은 단계의 공공미술이다.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문화체육관광부와 228개 지방자치단체가 동시 추진한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우리 동네 미술'은 낡고 낡은 초기 공공미술 개념을 끌어와 재탕한 프로젝트이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당시 예술뉴딜을 베꼈다.

 

예술가들의 생계부양 차원에서 2008년 시작된 '마을미술프로젝트'(이 또한 예술뉴딜의 일환으로 출발했다)처럼 '우리 동네 미술' 역시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술인들을 지원하고자 마련됐다. 예술가 일자리 제공을 통한 지속적인 창작 활동과 주민 문화향유 공간 조성이라는 명분이 붙었다.

 

결과는 좋지 못했다. 약 1년 전, '우리 동네 미술'은 시작과 동시에 지역과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쇳덩어리와 돌덩어리들을 공공미술이라는 이름 아래 강과 바다, 도심 곳곳에 뿌려댔다. 예술성을 헤아리기 힘든 국적 불명의 캐릭터가 벽을 채웠다. 공공영역의 주인인 주민들은 배제되기 일쑤였으며 기껏해야 단순하고 어설픈 기능적 개입에 머물렀다.

 

시간이 흘러 지난 6월경 대부분의 지자체가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약 1000억원이라는 역대 최대 예산을 투입한 '우리 동네 미술'은 지역 내 갈등과 미학적 평가가 불가능한 작품의 범람, 관리 부실의 우려를 낳으며 혈세만 낭비한 졸속 사례로 기록될 운명에 놓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의미 있는 프로젝트가 아예 없진 않았다는 것이다. 도시화로 사라져가는 '송도어촌계'와 '먼우금' 사람들의 삶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며 장소가 아닌 기억과 마음에 남는 공공미술을 추구한 연수문화재단을 비롯해 소외감과 사회적 고립을 겪는 장애인, 노인들과의 소통에 주목한 안양문화재단의 공공미술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때는 금지곡으로 꼽혔던 '해녀가'를 재해석한 음악다큐와 '우도' 사람들의 모습을 인터뷰 프로젝트 등으로 담은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우도 9경', 그리고 근대가옥을 주민들의 '인문학당'으로 탈바꿈시킨 광주광역시 동구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도 범람한 조형물 위주의 '우리 동네 미술' 속 변별력 있는 작업에 속한다.

 

이들 프로젝트들은 '보다 나은 공동체적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자문을 바탕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장소와 사람, 고유한 지역성에 초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장식'에 치중해온 기존 공공미술과 차이가 있다. 주민들 스스로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는 것도 시각적·물리적 맥락만을 좇은 여타 프로젝트 대비 구분되는 요소이다.

 

무엇보다 관·예·민이 힘을 모아 그곳에서 채집한 지역 내 무형의 자산을 기록함으로써 지역의 서사와 장소를 되새기며, 공간의 주체로 살아온 이들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려 했다는 사실은 동시대 공공미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가치를 알려주는 조타로 작동했다. 비록 군계일학이지만 이와 같은 몇몇 프로젝트가 논란의 '우리 동네 미술'을 살렸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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