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헌책방 외면하는 서울시 오피니언>기자수첩 [기자수첩] 헌책방 외면하는 서울시 소싯적 세운 인생 목표는 '입신양명'이었다. 벼락 출세한 성공 신화로 이름을 떨치면 행복할 줄 알고 정한 것이었는데, 나이 들고 영 틀린 생각이란 걸 깨닫게 됐다. 저 혼자 잘났다고 떵떵거리며 살면 세상 부러울 게 없을 것만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고등 지능을 가진 생명체라 홀로 살아갈 수 없어서다. 고로 만약 당신이 온전한 행복을 누리고 싶다면 주변에 있는 사람 모두가 만족스럽고 충만한 삶을 만끽하고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얼핏 보면 이루기 어려워 보이는 명제지만, 쉽게 성립시킬 방법이 하나 있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이 밥 먹고 똥 싸듯이 매일 책을 읽으면 된다. 독서를 습관화하면 상대방을 이해하는 힘이 길러져 갈등이 발생했을 때 숙의와 합의를 거쳐 원만하게 해결해 나갈 수 있게 된다.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민주주의가 바로 이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21세기 현재, 법과 제도가 국민의 의사 협의에 의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건 사람들이 책을 멀리하면서 민주주의가 힘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책과 사이가 소원해진 사람들이 다시 텍스트와 가까워지고 있다는 소식이 요즘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작년 10월 한강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출판계에 전례 없는 문학 신드롬이 일어난 것이다. 한강 작가가 상을 받은 직후 일주일간 온·오프라인 서점 매출이 40% 뛰었고, 서점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유행에 밝은 MZ세대가 텍스트힙(text-hip)을 이끌며 문학계에 불기 시작한 훈풍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최근 발생했다. 서울시가 공공헌책방 '서울책보고'에서의 헌책 판매를 중단하고 팝업 스토어 형태로 운영 방식을 바꾸기로 한 것. 시의 이 같은 결정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시가 위탁 판매가 종료된 책방이라고 부르는) 입점 서점의 의견을 묻지 않고 곧바로 내용 증명을 보내 계약 기간 종료 통보와 함께 책을 거둬가라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매출이 떨어지고 방문객 수가 줄었으면 서점 주인장들과 논의해 개선 방안을 찾는 게 먼저였어야 했는데, 시는 그러지 않았다. 헌책방 주인들은 잘못은 서울도서관이 했는데 자기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며 원통해했다. 시가 홍보도, 책 입고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의 일방적 판단으로 헌책방만 손해를 입은 게 아니다. 가장 큰 피해자는 시민이다. 그간 헌책방은 독서라는 취미에 입문하려는 초심자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문턱을 낮춰주는 역할을 해왔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3高 시대'에 2만원 가까이 되는 비싼 책을 수십권씩 사서 볼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