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덕의 냉정과 열정사이] 임종룡 회장의 장고(長考) 박승덕의 냉정과 열정사이 [박승덕의 냉정과 열정사이] 임종룡 회장의 장고(長考) 우리금융과 금융당국 간 단판승부가 한창이다. 흑돌을 잡은 우리금융 임종룡 회장. 포석부터 남달랐다. Y대 출신을 요직에 전진배치했다. 브랜드부문장(부사장)도 외부에서 영입했다. '자기 사람'으로 진용을 갖춘 임 회장은 인수합병(M&A) 시장에 뛰어 들었다. 수익 다각화 차원에서 증권, 보험회사에 눈을 돌렸다. 작은 증권사부터 인수해 우리종합금융과 합병했다. 또 금융지주사의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보험사 2곳(동양생명·ABL생명)을 잡았다. 승기를 잡는 듯 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났다. 지난 6월 177억원대의 지점 횡령사고에 이어 최근에는 손태승 전 회장 친인척의 수 백 억원 규모 부당대출 의혹이 터졌다. 고객 신뢰를 먹고 사는 은행에겐 치명타다. 흰돌을 쥔 금융당국은 흑돌을 포위하고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추석 명절 이전 기자간담회에서 "매우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면서 "경영진도 책임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앞서 이복현 금감원장은 더 센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현 경영진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일갈했다. 또 "(부당대출 건이) 제때 보고가 안 된 건 명확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고 돌직구를 날렸다. 우리은행이 지난 1~3월 자체 감사와 4월 자체 징계 과정에서 8월9일 수사기관 고소 내용에 적시된 범죄 혐의 및 관련 사실관계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금융당국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임종룡 회장의 장고(長考)가 이어지고 있다. 다음 수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가 가진 다음 수(시나리오)는 조병규 행장을 '사석(死石)'으로 활용하는 수다. 올 연말 임기인 조 행장이 책임지고 물러나는 선에서 이번 싸움을 끝내고 싶어 한다. 또 하나의 시나리오는 금감원 검사와 검찰의 수사가 끝날 때까지 패로 버티는 수다. 패란 바둑에서 서로가 상대 돌을 딸 수 있는 형태다. 내가 상대 돌을 따면 상대가 내 돌을 다시 딴다. 내가 다시 따면 상대가 또 되딴다. 이러면 바둑이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한번 돌을 땄을 때 그곳을 바로 되따지 못하게 규칙으로 정한 것이 패이다. 패가 나면 상대가 꼭 받아야 하는 자리에 돌을 놓는데 상대가 그것을 응수할 때 패를 딴다. 이를 두고 패감을 쓴다고 말한다. 임 회장의 패감은 관료출신으로 그동안 쌓아 놓은 인맥이다. 대통령실을 비롯해 국무위원, 국회의원 등 모든 라인을 동원해 살아남는 일이다. 하지만 검사 출신인 금감원장이 전면에 나선 것은 대통령실과의 교감을 방증하는 셈이다. 금융사고 사실 인지와 늑장 보고 등이 밝혀지면 내부통제 미비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시시비비가 가려져서 물러날 수 있다. 정통 관료 출신으로 불명예스런 퇴진이다. 흰돌은 공격을 잠시 멈춘 상태다. 금융당국 수장들은 경영진의 거취와 관련해 이사회와 주주가 판단할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사실상 이사회가 나서 경영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이사회는 임 회장이 금감원장과의 관계를 복원하고, '적(敵)'을 늘린 장 모 부사장 '정리'를 원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전개로 보면 현실화 가능성은 낮다. 시간이 많지 않다. 금감원 검사와 수사망이 좁혀 온다. 임 회장 주변 참모들은 기울어진 판세보다 자신의 생사가 중요하다. 버티라고 한다. 임 회장에겐 신의 한수가 필요하다. 돌을 던지는 수순이다. 바둑에서 '돌을 던진다'는 것은 바둑판 위에 돌을 놓아 패배를 선언하는 것을 뜻한다. 대마가 잡히거나 이미 승부가 났다고 판단할 때 돌을 던진다. 임 회장의 장고 끝 다음 수는 무엇일까. /금융부장 bluesky3@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