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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보고싶다고 하자 "1호선 가세요"...젊은세대 희로애락 담긴 '거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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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방에서 전수된 절약 꿀팁./ 그래픽=정민주 기자

 

#1. 전기세 아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안 쓰면 됩니다. 차단 멀티탭 쓰고, 집 나갈 때 한번씩 확인하고. 방에다 촛불 켜 놓을게요. 낮엔 불 켜지 말고 핸드폰 손전등으로 생활하세요.

 

#2. 다X소 -2만200원. 다X소를 털었나요? 반품하세요. 생활용품 샀어요. 아마도요. 상세 내역을 밝혀주시죠. 열나면 붙이는 거 7개, 수납장, 비료 등등 많이 샀습니다. 장난감도. 앞에 3개는 오케이인데 장난감? 탈락입니다. 실과 나무 막대만 있으면 재밌게 놀 수 있어요. 반성하세요. 네 ㅠㅠ.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거지방'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거지방은 개인의 지출 내역을 올려 평가받고 다 함께 소비를 줄일 방법을 모색하는 오픈 채팅방이다.

 

23일 카카오톡 오픈채팅에서 '거지방'을 검색했더니 '원조거지방', '거지방 경로당', '3040 거지소통방', '20대 거지방', 'TMI를 곁들인 거지방', '냅다 거지방' 등 수백여개의 단체 카톡방이 주르륵 나왔다.

 

본지가 1500명이 참여 중인 원조 거지방에서 지난 23일 오후 3시30분부터 24일 오후 8시30분까지 29시간동안 송수신된 수천건의 메시지를 분석한 결과 이곳에서는 소비 내역 평가뿐만 아니라 짠테크·할인 정보 소개부터 건강·노무 상담, 고민·넋두리 공유까지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다양하게 오고 갔다. 이들이 나눈 대화 내용을 희로애락 4가지 키워드로 풀어봤다.

 

◆희(喜)

 

MZ세대가 거지방에 몰리는 이유는 재밌어서다. 진지한 이야기에 기상천외한 드립으로 폭소를 자아내거나 어이없는 말들로 헛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어쩌죠. 뮤지컬이 너무 보고 싶어요"라는 고민 상담을 하면 "1호선 가십쇼. 타이밍 잘 맞으면 무료 공연 볼 수 있습니다"라고 진지하게 대답한다. "미세먼지가 많이 걷혔네요"라며 날씨 이야기를 하는 척하다가 "맑은 공기는 무료니까 많이 마십시다"는 말로 급선회하며 자린고비 노하우를 전파하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먹고 싶은 과자를 그려 올리며 "다들 저처럼 참으라"는 꿀팁(?)을 전수하는 사람도 있다. 이를 본 카톡방 참여자들이 "맛있겠다"며 군침을 흘리자 그는 말없이 '똥' 그림을 투척했다. "식욕 억제 감사하다"는 인사가 돌아왔다.

 

거지방에서 목돈 드는 소비는 죄악으로 취급받는다. "노트북이 고장 나 사야 할 것 같다"고 하자 "사치다. 그런 흉악한 금액을··· 사면 절대 안 된다", "국산은 맞으면 켜짐", "기계는 때려야 정신 차리죠"라는 재치 넘치는 답변이 와르르 쏟아졌다.

 

◆로(怒)

 

거지방 사람들을 가장 화나게 하는 건 무지성(묻지마) 소비와 치솟는 물가다. "저 이번 달에 벌써 20만원 썼는데 돈 아끼는 법 좀요"라고 조언을 구한 학생에게는 "패션 그지(겉멋만 든 거지)세요?"라는 일침이 날아왔다. "학생인데 노는 데 20만원 썼어요"라고 하자 "아끼려는 욕심을 버리거나 친구를 버리거나"라는 답이 나왔다.

 

'배달음식 -15000원'이라는 톡에는 "장난하쇼?", "여기 기만자(남들을 기만하는 사람)가 있어요!", "배달은 사치입니다. 두 다리는 괜히 있습니까? 포장하셔야죠!", "소명하세요"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이번 달 아파트 관리비 7만원 넘게 나왔다", "전 가스비 12만원", "난방, 에어컨 안 틀어도 이 정도인데 둘 중 하나라도 켜면 폭탄 맞겠네요". "튼 게 없는데 젠장!"이라는 성토 글에는 "이번 여름은 손부채로 버티세요"라는 화를 돋우는 답변이 달렸다.

 

◆애(哀)

 

'웃프다'는 신조어처럼 웃음과 슬픔은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다들 만약 부산을 간다면 KTX 특실, KTX 일반실, ITX 새마을호, 무궁화호 중 뭐 타실래요?"라고 묻는 말에 "부산 가면 돈 써서 안 갈래요", "무궁화호 타야죠. 남는 건 시간이요. 없는 건 돈이잖아요"라는 답은 웃기면서도 슬프다.

 

1380원짜리 사리면 5개 번들 사진과 함께 '5일치 식량'이라는 메시지에는 "거기엔 면밖에 없잖아요 ㅜㅜ"라는 답글이 달리자, 카톡을 보낸 이는 가격이 3160원인 대용량 라면스프(285g) 구매처 링크를 올리며 "생각보다 오래 먹는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본 한 참가자는 "라면 몸에 안 좋다"며 "냄비밥 해드시라"는 따뜻한 조언을 건넸다.

 

"저녁에 초밥 먹고 싶은데 어쩌죠?"라는 질문에 사람들은 "식초에 밥 찍어 먹으면 된다", "초밥에 회 빼고 밥만 냠냠"이라는 답변을 했다. 해산물 맛이 첨가된 과자를 흰밥 위에 올린 사진을 보내며 "과자초밥 드세요"라는 이도 있었다.

 

◆락(樂)

 

거지방 참가자들은 나눔을 즐거워했다. 나눔 품목은 알뜰 생활 팁 같은 무형의 정보부터 식재료 등 유형의 물질까지 다양했다. "헌혈 200번이면 영화 200번 보게 해주냐"는 물음에는 "네. 운 좋으면 가끔 영화 관람권 1+1도 한다", "헌혈하러 가기 전에 레드커넥트 어플에서 그날 뭐 주는지 이벤트 확인하고 헌혈 예약하면 된다"는 등의 정보를 공유했다.

 

'대파 무료 나눔 득템 +1500'이라는 메시지를 올린 이는 "양이 많은데 오시면 좀 나눠 드립니다. 얼려놨습니다. 캬캬"라며 나눔을 또 다른 나눔으로 환원했다.

 

'밀레니얼은 왜 가난한가'의 저자 헬렌 레이저는 "지금의 젊은이들은 그들의 물질적 부유함이 부모 세대의 부유함을 능가할 가능성이 이미 닫혀 버렸음을 깨달았다"면서 "오늘날 많은 이들이 짊어진 고통과 빈곤의 근원에는 겨우 8명이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절반이 가진 것보다 많은 부를 주무르는 세계, 10억명이 굶주리는 세계, 기업이 세금을 낼 의무도 유의미한 고용을 창출할 의무도 면제해 주는 세계에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기성세대는 진정한 좌파, 즉 마르크스 유물론주의 좌파의 약속을 지키는 데 실패했고 자유주의적 방식으로 굳어버렸다"며, 젊은이들에게 자본주의 체제를 뒤집을 혁명을 일으키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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