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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윤 변호사의 알기 쉬운 재건축 법률] 채무불이행 인정 안 되면 도급계약 해제된다고 볼 수 없어

여지윤 변호사/ 법무법인 바른

Q. 건축물설계업 등에 관한 업무를 하는 甲건축사무소는 乙주택재개발정비사업 조합과 정비계획수립, 정비구역지정 및 설계에 관한 용역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용역이 수행되던 중 乙조합은 甲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계약해제를 통보했다. 이에 甲은 甲의 채무불이행이 없었으므로, 乙의 해제통보가 부적법하다면서, 乙을 상대로 계약이 존속함을 전제로 하는 용역대금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甲의 채무불이행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乙의 해제가 부적법하다면, 민법 제673조에 따라 용역계약이 해제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A. 위 사건은 수급인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한 도급인의 해제의사에 임의해제 의사가 포함되었는 지 여부가 문제가 된 사안이다. 위임계약은 당사자 간의 특별한 대인적 신뢰관계를 기초로 하므로, 위임계약의 각 당사자는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민법 제689조 제1항). 뿐만 아니라, 계약의 일방 당사자가 타방 당사자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위임계약을 해지했으나 채무불이행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도, 위 해지의 의사표시에 민법 제689조 제1항에 따른 임의해지 의사가 포함돼 있다고 볼 수 있다(대법원 2015. 12. 23 선고 2012다71411 판결).

 

도급인도 수급인이 일을 완성하기 전이라면 언제든지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임의해제권이 있다(민법 제673조). 계약의 구체적인 내용에 따라 판단될 것이나, 대체로 구체적인 결과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도급계약'으로, 단순히 행위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위임계약'으로 볼 수 있는데, 위 사건에서 甲과 乙이 체결한 용역계약은 '도급계약'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도급계약도 위임계약과 마찬가지로, 수급인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한 도급인의 해제 의사표시에 민법 제673조에 의한 임의해제 의사가 포함돼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최근 대법원은 위와 유사한 사건에서, "수급인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한 도급인의 해제의 의사표시에는 민법 제673조 임의해제 의사가 포함돼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22. 10. 14. 선고 2022다246757 판결). 따라서 乙조합이 甲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한 해제통보를 했으나 甲의 채무불이행이 없었던 것으로 밝혀진 경우, 그렇다고 해 민법 제673조에 기해 용역계약이 해제됐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도급인이 수급인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도급계약을 해제하는 경우에는 수급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민법 제390조). 그러나 도급인이 민법 제673조에 따라 도급계약을 임의해제하는 경우에는, 거꾸로 수급인이 도급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민법 제673조).

 

따라서 도급인이 수급인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도급계약을 해제했음에도, 민법 제673조에 따라 도급계약이 해제된 것이라고 해 버리면, 도급인으로서는 자신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가, 거꾸로 자신이 손해배상을 해줘야 하는 처지가 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대법원은 수급인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한 도급인의 해제 의사표시에 민법 제673조에 따른 해제 의사가 포함돼 있다고 보는 것은, 도급인의 의사 및 의사표시의 일반적인 해석원칙에도 반한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수급인의 입장에서도 자신은 채무불이행을 하지 않았으므로 도급계약이 적법하다고 믿고 일을 계속했음에도, 갑자기 민법 제673조에 의한 해제가 인정돼 버리면, 그 사이에 도급계약과 무관한 일을 진행한 결과가 돼, 불측의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위임계약은 당사자 사이에 특별한 신뢰관계를 기초로 하는 것으로, 위임인이 수임인의 채무불이행을 주장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신뢰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그러한 상태에서 수임인이 계속하여 위임사무를 처리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

 

그러나 도급계약은 이와 달리, 위임계약에서의 정도로 당사자 사이의 특별한 신뢰관계를 기초로 한다고는 볼 수 없으므로, 도급인이 수급인의 채무불이행을 주장한다거나 당사자 사이에 분쟁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한 해제 의사표시에 임의해제의 의사가 포함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위 사건에서는 乙조합이 소송에서 자신의 해제통보에 민법 제673조에 의한 해제의 의사도 포함돼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 바가 전혀 없었다. 이와 달리, 만약 乙조합이 위와 같은 취지의 주장을 하고, 실제로도 乙의 해제통보에 민법 제673조 해제의사가 포함돼 있다고 볼만한 사정이 있었다면, 위 대법원 판결과 달리 판단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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