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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36>희대의 와인사기꾼…타짜의 와인

-영화로 맛보는 와인⑤타짜의 와인(Sour Grapes)

안상미 기자



2008년 4월. 뉴욕의 한 경매 카탈로그에 프랑스 부르고뉴의 와인너리 도멘 퐁소의 '끌로 드 라 로쉬'가 실렸다. 사진 속 와인의 빈티지는 1929년. 도멘 퐁소의 와인메이커 로랑 퐁소는 경악했다. '끌로 드 라 로쉬'는 1934년 빈티지부터 생산됐기 때문.

위조품은 한 두개가 아니었다. '끌로 생 드니'의 경우 1945, 1949, 1966, 1971년산이 오래된 희귀 와인으로 경매 리스트에 올라있었다. '끌로 생 드니' 역시 1982년부터 시판되기 시작했다.

2008년 4월 뉴욕의 한 경매 카탈로그에 실린 위조 와인들 /영화 '타짜의 와인' 화면 캡쳐



다큐멘터리 영화 '타짜의 와인(Sour Grapes)'은 2000년대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희대의 와인사기꾼 루디 커니아완의 얘기를 담았다. 경매에 나온 가짜 와인은 모두 루디의 것이었다.

당시는 닷컴 붐으로 미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던 때였다. 미국 금융가에는 돈이 흘러 넘쳤고, 와인경매가 유행처럼 인기를 끌었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경매에서는 1972년산 로마네 콩티가 1만1000달러에 낙찰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 금이 아니라 와인에 투자해야 할 때"라며 "고급 와인 컬렉션을 소장하고 싶으시다면 지금이 매수 적기"라고.

부유한 수집가들이 너도나도 경매에 뛰어들면서 와인가격은 순식간에 치솟았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이가 바로 루디다. 홀연히 경매시장에 나타나 수억원 어치의 와인을 매집해갔다. 인심도 후했다. 경매로 사들인 고급와인으로 와인모임을 만들고 아낌없이 나눠마셨다. 와인의 맛과 향을 기억하는 데도 탁월했다.

와인경매 시장을 뒤흔들었던 루디 커니아완을 다룬 당시 실제 기사 /영화 '타짜의 와인' 화면 캡쳐



두둑한 현금과 친화력, 와인에 대한 예리한 미각과 비상한 기억력. 상류사회 와인애호가들의 환심을 사기 완벽한 조건이었다. 루디가 자신의 와인컬렉션을 내놓기만 하면 너도 나도 사갔다. 순식간에 와인업계 유명인사가 된 루디지만 배경에 대해선 아는 이가 없었다.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이라는 사실 외에는 소문만 무성했다.

루디에 대해 의문을 가진 이는 와인메이커 로랑 퐁소와 함께 거부 수집가 빌 코크였다.

와인 사기범을 잡기 위해 나선 수집가 빌 코크를 다룬 잡지 '와인스펙테이터' 표지 /영화 '타짜의 와인' 화면 캡쳐



루디에게서 사들인 와인 한 병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된 빌은 사설탐정은 물론 와인라벨이나 캡슐, 잔에 통달한 사람들을 고용해 와인을 전수 조사한다. 위조로 판명난 것만 해도 400병이 넘었다. 그걸 사들이는데 든 돈은 무려 4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50억원에 달한다.

조사를 할수록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루디에게는 이미 수년 전에 추방 명령이 내려져 있었다. 체포영장마저 발부된 상태였다. 비자발급을 위해 기재했던 인도네시아 사업체 주소를 직접 찾아가보니 철물점 같은 작은 상점만 있었다. 루디의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와인 전문가라는 이들이 어떻게 하나같이 루디에게 속았을까. 다시 한 번 기억해 보자. 와인에 대한 예리한 미각과 비상한 기억력. 루디는 최고급 와인을 마셔보고는 맛을 기억해 저렴하지만 비슷한 맛을 내는 와인들을 사다가 조합해냈다. 가히 천재적인 재능이었다. 루디의 집에서는 각 와인과 빈티지별 조합공식 수천개가 나왔다.

루디는 미국에서 위조와인을 판매한 혐의로는 최초로 유죄선고를 받았다. 그것도 무려 10년에, 피해자 보상금만 2840만 달러다. "와인이 내 인생이 되다 보니 그 속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루디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루디가 판매한 가짜와인 중 최대 1만 병이 여전히 개인 소장품으로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와인셀러에 고가의 희귀 와인이 있다면 다시 한번 살펴보자. 먹을 가치도 없는 '신포도(영화 원제, Sour Grapes)'는 아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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