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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기질과 자유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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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 당신의마음 연구소장

 


인간은 자기 행동에 대해 본능적으로 항상 자신의 자유의지로 스스로 합리적인 판단에 근거하여 결정을 내린다고 믿는다. 하지만 뇌 과학에서 발견한 충격적인 사실 하나는, 우리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모순되게도 우리의 유전자, 몸 그리고 뇌 심지어 주변 사람들인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 의지는 사실 마치 나란 존재가 내 몸의 주인으로 어떤 행동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계속 설명하는 말하는 나 즉 '자아'의 착각인 것이다. 이 말하는 나는 항상 '내가…'라는 말을 하면서 마치 자신이 행동의 중심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의지로 무엇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뇌에서 먼저 행한 것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선택했다'라는 설명을 가져다 붙일 뿐이라는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장이 모든 사업을 자신이 하고 있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하는 일이라고는 딱 그런 말을 하는 일 뿐임을 자신만 모른다. 그렇다고 우리가 자신의 판단이 전혀 없이 가느다란 줄에 연결되어 조정당하는 마리오네트 인형이기만 할 뿐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한 행동에 대해 피드백을 받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 자유의지는 없지만 피드백에 대한 의지는 있다.

또 다른 면에서 보면 우리가 판단하는 많은 이성적 사고도 사실 그 이면에는 유전적인 요소에서 근원하는 생물학적인 기질의 누적된 경험의 결과일 가능성이 많다. 기본적으로 동양인들은 세로토닌 촉진자와 연관된 유전자가 코카서스계의 유전자에 비해 25%가 다르며 이런 대립유전자의 차이는 시냅스 간의 세로토닌 흡수 분자의 수위에 영향을 주게 되어 동양인들이 서양인들에 비해 정서표현을 낮게 하며, 관련하여 도파민의 분비도 저하시킨다고 한다.

이러한 경향이 문화적으로 동양인들이 좀 더 명상적이며 차분한 성향을 가져오게 하며 투쟁적인 성취보다는 도가적이 분위가 더 건강한 인간의 성향과 연관되는 것으로 가치를 형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서구 철학이 성취를 강조하는 반면, 동양철학은 고요와 명상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멀리 떨어진 기질적인 측면과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이런 면에서 자연스러운 것이 무엇인지와 건강과 정상이 무엇인지가 윤리적 규준으로 작용하는 것은 매우 비과학적인 사고방식일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는 다양한 형태의 법적 혹은 문화적 판단도 우리의 유전적인 성향으로 인한 결과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어떤 행동이나 생각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의 이면에는 이렇게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도 못하는 영역이 관련되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자폐아 연구들에서 보면 장내 세균이 치료적 돌파구로 이야기가 되고 있는 것도 한 예일 것이다. 눈을 맞추지 못하며 정서적 교류를 하지 못하여 마치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어 보이는 아이들이 사실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크기인 대장 내의 작은 세포 영향일 수 있다는 것은 위에서 필자가 말한 것과 같이 우리가 갖는 어떤 가치나 근거가 사실은 전혀 엉뚱한 것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다시 확인시킨다.

이런 면에서 인간이 어떤 행동이나 가치 판단을 할 때 항상 염두 해 두어야 할 점은, 절대로 어떤 주장이 사실 자신이 알고 있듯이 확고한 타당성에 근거하지 않으며 때로는 상상도 못하는 영역의 결과물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전혀 관련 없는 것들을 통해 그럴 듯 하게 설명하는 자기 합리화의 존재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자신은 절대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아니다. 우라는 절대로 자기 스스로 자신을 알 수 없다. 그냥, 우리는 그렇게 믿기로 했기 때문에 그렇게 설명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아빠가 일요일에 운동을 가려고 하는데 너가 볼 때 아빠가 갈거 같아?" 라고 일요일에 운동을 갈지 말지를 항상 딸에게 묻는다. 그러면 항상 내 마음의 의지와 반대되는 다음과 같은 대답이 온다.

"뻥 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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