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人 머니 산업 IT·과학 정치&정책 생활경제 사회 에듀&JOB 기획연재 오피니언 라이프 AI영상 플러스
글로벌 메트로신문
로그인
회원가입

    머니

  • 증권
  • 은행
  • 보험
  • 카드
  • 부동산
  • 경제일반

    산업

  • 재계
  • 자동차
  • 전기전자
  • 물류항공
  • 산업일반

    IT·과학

  • 인터넷
  • 게임
  • 방송통신
  • IT·과학일반

    사회

  • 지방행정
  • 국제
  • 사회일반

    플러스

  • 한줄뉴스
  • 포토
  • 영상
  • 운세/사주
사회>사회일반

[임시정부100주년] <12>대중매체 역사 살펴보기…②영화 '덕혜옹주'

영화 덕혜옹주 포스터. /영화 덕혜옹주 스틸컷 이미지



[임시정부100주년] 대중매체 역사 살펴보기…②영화 '덕혜옹주'

"나는 낙선재에 오래오래 살고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제1대 황제 고종이 61세가 되던 해에 본 늦둥이 딸, 덕혜옹주의 대사다.

영화 '덕혜옹주'(배우 손예진)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삶을 그려낸 영화다. 영화에서는 덕혜옹주가 일본에 끌려가 한글학교를 세우고 강제로 공장에 끌려간 조선백성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 등 독립운동에 적극 나선 것으로 그려지지만 사실 이는 역사 기록에 없는 내용이다.

영화 속 고종황제와 덕혜옹주 모습. /영화 덕혜옹주 스틸컷



때문에 2016년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역사왜곡이라는 혹평이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는 덕혜옹주의 안타까운 삶을 통해 나라를 잃어버린 백성들의 한을 픽션으로나마 그려낸다. 당시 비극적인 인물을 대표하는 덕혜옹주를 통해 그 시대의 민중들의 삶이 엿보이기도 한다.

덕혜옹주의 정혼자였던 김장한. /영화 덕혜옹주 스틸컷



◆ 옹주의 오른팔 김정한…역사에서는 정혼자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덕혜옹주를 지키는 건장한 남자가 있다. 바로 김장한(배우 박해일)이다. 영화속에서 김장한은 덕혜옹주의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 늘 옹주의 곁을 지키는 인물로 그려진다. 사실 김장한은 고종이 독살당하기 전 고종이 찜해둔 덕혜옹주의 정혼자였다.

영화에서는 김정한이 덕혜옹주를 끝내 대한민국으로 모시고 오는 장본인으로 그려지지만 역사적으로는 독립운동과 관련이 없는 인물로 알려졌다. 덕혜옹주는 김장한의 형인 김을한에 의해 귀국하게 된다.

영화에서 보여진 것 처럼 덕혜옹주는 김정한이 아닌 대마도의 번주 출신인 소 다케유키 백작과 혼인하게 된다.

조선 민중의 우상이자 희망의 상징이었던 덕혜옹주가 친일파의 움직임에 일본인에게 시집을 가게되자 당시 신문사들은 옹주의 결혼 기사에 일본인 신랑의 얼굴을 의도적으로 삭제하기도 했다. 당시 민심을 반영한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다.

반면 덕혜옹주의 일본유학과 일본인과의 결혼을 추진하고 대한민국 귀화를 방해했던 친일파 인물 한택수(배우 윤제문)는 '한창수'라는 실제 인물로 그려졌다.

일본에 징병온 노동자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 덕혜옹주 이미지. /영화 덕혜옹주 스틸컷



◆ 기모노 거부·한글학교 건설·영친왕 망명작전 "왜곡"

영화에서 덕혜옹주는 한택수가 보낸 기모노를 입기 거부하고 이를 계기로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가게된다. 하지만 이는 역사에 없는 기록이다.

또 일본으로 유학을 간 덕혜옹주가 일본에서 한글학교를 세우고 일본으로 잡혀온 조선 노동자들 앞에서 연설을 하지만 이도 사실과 다르다.

일본에서 영친왕 내외의 망명을 돕는 사건도 영화에서 스펙타클하게 그려지지만 이같은 역사 또한 기록에 없다.

영화 속에서 영친왕 망명을 시도 작전을 거행하는 독립운동자들 모습. /영화 덕혜옹주 스틸컷



영친왕을 망명시키려고 했던 시도는 있었지만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는 것이 역사적인 기록이다. 이에 영화는 '만약' 영친왕 망명작전이 실행됐으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력을 창작해낸 것이다.

개봉 당시 영화는 상영 기간 내내 실존 인물과 역사석 사실을 기반으로 창작과 역사고증이라는 차이를 두고 관객들에게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덕혜옹주가 항일정신을 가진 인물이라는 역사적 고증은 찾을 수 없지만 역사나 기록에 없는 옹주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해 실제 인물에 대한 아쉬움이 채워지기도 한다.

실제 소심한 성격의 덕혜옹주는 독살당하는 것이 무서워 보온병을 늘 들고다니면서 물을 마셨다고 기록에 남겨져있다.

일본의 항복에도 조선으로 귀국하지 못한 덕혜옹주. /영화 덕혜옹주 스틸컷



덕혜옹주는 일본이 항복한 후 광복이 찾아오고나서도 조선으로 귀국하지 못했다. 새로 들어선 임시정부의 반대로 귀국을 거부당한 것이다. 이때마저 대한민국에서는 청산하지 못한 친일파와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다는 것이 보여진다.

덕혜옹주는 16년이 더 지난 후에야 고국땅을 밟았고 창덕궁에서 여생을 보내다 1989년 4월21일 78세의 일기로 창덕궁 수강재에서 별세한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Copyright ⓒ 메트로신문 & 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