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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어떤 이야기

홍경한(미술평론가)



20여년 이상 글을 쓰고 살지만 한때는 그림 그리는 직업을 꿈꿨다. 계기가 된 건 고등학교 1학년 재학 당시 국어선생님이 들려준 돈 맥클린의 '빈센트'였다. 구슬프듯 애절한 가사와 아름다운 선생님의 목소리는 낯설기만 했던 미술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했고, 어떤 목표도 없이 겉돌던 내 생에 처음으로 삶의 동기를 부여하는 작은 사건이었다.

예술가를 지향하는 이들이 대개 유사한 수순을 밟듯, 나 또한 미대에 진학했다. 낮엔 정권퇴진 운동과 학원자유화 투쟁에 참여하며 밤엔 그림을 그렸다. 정당성을 상실한 권력이 자유를 억누르던 시절이었으나 그림을 그린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아니, 오히려 세상의 어수선함은 막연하게나마 실존이란 인간이 세계와 관계 되는 존재의 현사실임을 깨닫게 했고, 미술의 영향력을 믿도록 했다.

졸업 후 개인전을 여러 번 열었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못했다. 재능은 열정에 비례하는 게 아니었다. 예술에 관한 철학 역시 부족했다. 자괴감을 갖고 있던 내게 지인들은 버티다 보면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데, 기회는 거저 주어지지 않았다. 욕망의 크기만큼 현실적인 대가의 무게도 동일해야 했다. 그게 사회였고 미술계도 다르지 않았다.

가장 힘든 건 두려움이었다. 공허한 캔버스 앞에서 체감하는 상실된 좌표와 막막함 가운데 무언가를 끄집어내야하는 부담감, 그리고 '무덤 속의 평화'와 진배없는 작업실의 무게감은 경험하지 않은 이들은 결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사실상 그건 '불안'과 일란성 쌍둥이였다.

견딜 수 없었던 그해 겨울, 그림을 모두 태웠다. 가슴에 품었던 꿈은 길었으나 산화되는 건 참으로 짧았다. 환상적 전망과 한줌의 미련까지 일순간에 타들어갔다. 그렇게 작가로써의 삶은 종지부를 찍었다. 이후 취업을 했고, 작가의 길과 무관한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 사이 붓 하나, 연필 한 자루 손에 쥔 적 없다. 그럼에도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는 발작하듯 찾아왔다. 학생 시절 자주 찾던 화방이나 역사를 지닌 전시장에 가면 유독 그랬다.

생각해보면 화방은 그 자체로 설레던 공간이었다. 주머니는 가벼워도 갖고 싶은 것은 많았고, 불필요할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그저 사놓는 것만으로도 괜히 뿌듯하게 만드는 묘한 곳이었다. 전시장도 그랬다. 지금은 역사 뒤로 자취를 감춘 '그림마당 민' 등은, 예술의 역할과 가치를 자문하는 장소이자, 고통으로 주름지고 빛바랜 익명을 위로하는 무대였다. 적어도 내겐 시대를 읽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리였다.

세월의 간극만큼 마음 속 격한 감정이 돌연 세차게 일어나는 현상은 더 이상 없다. 이젠 이성의 포획물과 감성적 내면에 현시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혼동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세상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게 되면서 되레 절망과 불안의 기억으로부터 달아나려는 자아는 견고해졌다.

하나, 지금도 화방에 가면 쓰지도 않을 재료들을 습관처럼 주워 담는다. 전시장에서 마주하는 몇몇 작품들은 하얀 리넨 위, 세상을 색으로 수놓으려 했던 과거로 안내한다. 그렇다고 그림을 그리는 무모한 짓은 벌이지 않는다. 예술에 규칙을 부여하는 재능이란 연습으로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작가로써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하며 서로의 삶을 위로한다. 많은 이들에게 예술가이기에 겪는 불안에 대해 말하고, 어째서 존중해야 하는지를 이해시키기 위해 글을 쓴다. 하루하루가 냉혹하기만 한 현실 아래 유일한 평등인 죽음으로 걸어가며 남모를 강박에 시달리는 작가들, 천형임을 알면서도 해방되지 못하는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대신 전한다. 어쩌면 그건 나의 이야기일 수 있었기에.

■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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