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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재외기관까지 가세한 노동착취

홍경한(미술평론가)



미술인들이 자주 방문하는 미술정보 사이트에는 미술계 동정 외에도 공·사립 문화예술 공간에서 운영하는 공모가 매일 수십 건씩 등재된다. 전시에서부터 레지던시, 창작지원까지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전시기회가 변변치 않은 젊은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공모가 많다는 게 특징이다.

단순히 양적 측면만 따지자면 작가들의 창작발표의 기회가 꽤나 확장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구나 싶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살피면 작가들을 상업적·행정 편의적 도구로 보는 듯한 느낌을 배제하기 어렵다. 자신들의 특정 목적을 위해 '기회'를 수단화 하고 있다는 인상도 없지 않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작가 A는 모 갤러리가 운영하는 신진작가 공모전에 지원해 선정됐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곧 전시를 포기해야 했다. 막상 선정되자 갤러리 측은 수백만 원 상당의 작품을 기증해야 한다는 황당한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는 공모 요강에 없었다.

설치조각을 주로 하는 작가 B는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에서 진행한 작가공모에 뽑혀 외국 전시를 앞두고 있지만 마음이 심란하다. 80만원도 안 되는 지원금으로 작품 운송은 물론 미국행 항공료와 재료비까지 해결해야하기 때문이다.

결은 다르지만 미술관도 작가들을 심적으로 불편하게 만들곤 한다. 과거 작가 C는 모 미술관으로부터 재능기부 형식으로 작품을 기증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보상이라곤 달랑 운송료뿐이었다. 작가비, 재료비는 지급되지 않았다. 작가는 잠시 갈등했으나 미술관 소장품이 된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은 채 결국 작품을 미술관으로 보냈다.

A의 사례는 '선정 작가'를 빌미로 한 사실상의 대관이다. 말이 좋아 지원이고 선정이지, 실은 대관료에 상응하는 비용을 작품으로 받는 '꼼수'일 뿐이다. 난방비를 달라거나 도록은 반드시 자신들의 거래처에서 만들어야 한다 는 등의 온갖 소소한 명목으로 예정에 없던 비용을 청구하는 식의 흔한 '잔꾀'와 별 차이 없다.

B는 올해 입법 예정인 문화체육관광부의 '미술진흥 중장기 계획'과 상충한다. 해당 계획에는 전시 참여 작가에게 창작에 소요되는 사례비, 작품 제작에 필요한 인건비 및 재료비, 현장설치비 등의 지급을 골자로 하는 '미술창작 창작보수제도'가 들어있다. 그런데 정작 문체부 산하기관조차 작가들을 착취하며 헐값에 이용하고 있다.

C의 경우는 미술관의 권위를 이용해 소장품 목록을 거저 채우려는 질 나쁜 예다. 차후 합리적 지불에 제동을 거는 좋지 않은 기록이기도 하다. '미술관 프라이스'라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워 시장가의 절반도 되지 않는 금액으로 작품을 매입하는 것과 함께 사라져야할 적폐다.

작가에게 손실을 전가하고 대관 일정마저 거저 채우는 편법에 불과한 일부 갤러리들의 선정 작가 프로그램, 100만원도 안 되는 비용으로 전시공간을 채우면서도 국가의 문화예술품격을 논하는 정부기관, 직접 생산자로부터 노동의 성과를 무상으로 취득하려는 미술관.

전부는 아니겠지만 위와 같은 현상을 보고 있노라면 예술적 완성도를 위한 작가들의 기여도만큼 우리 미술계가 그들에게 합당한 대우를 하고 있는지 되묻게 된다. 한편으론 문화권력에 의한 잉여가치의 전유에 속절없이 끌려다닐 수 밖에 없는 작가들의 처지에 문득문득 씁쓸해진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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