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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SKY 케슬 지옥

진성오 당신의마음연구소장



최근 대학을 가기 위한 부자들의 교육열을 다룬 드라마가 화제였다. 필자는 임상 현장에 20년 넘게 있다 보니 한국 사회의 양끝을 다 보는 기회가 많다. 유명 연예인의 자녀부터 두 부모가 모두 지적 장애여서 조부모에게 어렵게 성장하여 한 끼 밥만 먹어도 행복한 여자 아이까지. 삶의 양끝을 볼 수 있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하기는 어려운 경험일 것이다.

직업의 특성 때문인지 혹은 개인적 호기심인지 모르지만 나보다 더 뛰어난 학벌에 높은 신분과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부터 사회적으로 계층을 나눌 때 진정 바닥이라고 생각되는 위치의 사람들까지 만나본 것이다. 그 양끝을 가져야 할 일종의 척도로 놓고 본다면 나도 어딘가에 위치 지어져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할 때 위로 올려다 보아도 나 자신보다 더 뛰어나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은 그 끝과 한이 없으며 아래로 내려다 봐도 나보다 비참하고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살아가나 하는 듯해 그 바닥의 끝이 없어 보인 사람들도 있다. 1등부터 꼴등까지 등수를 나누거나, 가장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 하나지만 그 조차 썩어 들어가는 사람까지 만나봤다고도 할 수 있다. 그 한없는 척도의 긴 줄을 보게 되면 더 가지고 더 배우고 더 올라가는 것의 정도나 도달해야 할 곳에 대한 목표가 진정 우리에게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사다리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한 발짝이라도 더 올라가려는 것은 그 끝에 남겨져 있을 공허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사실 드라마에 나오는 sky는 하늘이 아니라는 것을 한국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그 하늘이 아닌 하늘에 오르기 위해 자식에게 모든 자원을 쏟아 붓는 모습을 보고 혀를 찰 수도 있고 질투 아닌 질투에 자식에게 그러한 교육을 하지 못하는 투정으로 부정적인 시선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필자도 약 10년 전부터 이미 하늘을 넘어서서 담쟁이 넝쿨 케슬을 행해서 노력하는 아이들을 만나고 있기는 하였다. 물론, 그 담쟁이 넝쿨을 아이비리그 라고도 혹자는 부른다. 이런 면에서는 TV 드라마의 '하늘'은 그들에게 깜도 안 되고 어떤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떤 분들은 이건 마치 영어를 잘 하면 끝인 줄 알고 열심히 공부해서 어렵게 돈 많은 재벌 집에 시집 간 여성이 시부모와 시누이들이 모여서 영어는 기본이고 불어로 서로만 알아듣게 대화할 때 느껴지는 열등감과 자괴감 같은 감정을 유발할 만한 표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자괴감이나 열등감을 느낄 분들에게 그냥 운이 좋아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본 필자가 희망찬 이야기를 하나 해드린다면, 스카이 케슬이던 아이비리그이던 인간은 모두 자신들 만의 '마음의 지옥'이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와 상담했던 내담자들 중에는 그렇게 원하는 담쟁 넝쿨의 미국 대학을 가도 이후에 접해야할 나보다 더 '인싸(in group이라는 의미인 걸 혹시 모르는 분을 위해)'에 속하면서 자신이 한국에서 얼마나 잘 나가던 거기에 끼지도 못한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간접적으로 유추해서 보면 우리가 볼 때 아무리 행복하고 성공적으로 보여도 그 조차 또 다른 자신 만의 지옥이 여전히 있다는 점이다. 그런 지옥 같은 세상은 여전히 남아 있고, 그래서 남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재벌집의 자녀가 망가지고 혹은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행동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게 뭐 없는 분들에게 희망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고통은 타인과 나눌 수 없는 자신만의 영역에 존재하는 것이고 그건 당사자 말고는 절대로 나눌 수 없고, 타인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필자는 더럽고 덜 떨어져 보이고 그리고 무능해 보이는 지적 장애 아동이 손위 쥔 사탕 하나로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을 지을 때 부러움과 슬픔을 같이 느낀다. 아마도 그 부러움은 작은 사탕 하나에 그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이고, 슬픔은 그 작은 행복마저 어쩌면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어떤 생각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방식으로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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