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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진성오의 심리카페] 영원한 생명-코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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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 당신의마음연구소장

 


최근 필자는 치매나 나이 드신 분들의 신경심리검사를 많이 하고 있다. 역시 늙는 건 좋은 게 아니다. 아니 늙는 게 좋지 않다기보다는 병들고 기력이 약해지는 게 좋지 않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노화의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은 기억의 망각이다. 자신이 알고 있던 삶의 경험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좀 아이러니 한 것은, 망각하면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노화로 인한 기억 상실은 현재의 시간부터 가까운 것들을 먼저 잊게 만든다.

현재의 기억부터 사라지는 것은 마치 바다의 생물처럼 생겼다고 해서 해마라고 불리는 기관이 기억의 관문 역할을 잘 하지 못하는 것도 한 원인이다. 새로운 기억들을 저장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억 관문의 노화로 새로운 것이 저장되지 못하면서 점점 과거의 기억들이 사라져 지금 시간이 언제인지, 현재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딘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얼굴이었는지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증상이 심한 분들은 기억력에 관련된 검사를 할 때 남은 기억이 20대 초반이여서 자신이 78세인 나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어렴풋 자신이 나이 먹었다는 것은 알지만 남은 기억의 한 조각은 20대 초반의 어떤 시간에 남겨져 있게 된다.

그래서 검사 도중에 아버지가 퇴근해서 집에서 기다리니 집에 가야 한다고 말한다. 아버님이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가 여쭤보면 58세라 말한다. 이미 돌아가신지 50여년이 넘었는데 할머니는 그 시간에 사는 것이다.

노화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한 젊음과 삶을 꿈꾸기도 한다. 1985년에 나온 '코쿤'이라는 영화가 있다. 알처럼 생긴 큰 캡술안에 동료 우주인을 150만 년 전쯤 과거에 어쩔 수 없이 잠시 집어놓고 태평양 심해에 안전하게 두었다가 다시 데려가기 위해 온 외계인들의 이야기이다.

지구인 형상의 껍데기 안에 영혼의 형태로 빛이 나는 진화한 안드로메다 어딘가에서 온 우주인들. 그들의 동료를 담은 코쿤을 잠시 임대한 수영장에 두었는데 죽음을 앞두고 있는 양로원의 장난꾸러기 할아버지 세 명이 몰래 침입하여 마음껏 개구쟁이처럼 수영을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할아버지들은 회춘하고, 이 사실을 알고 자신의 부인과 애인까지 수영장에 데려와 회춘시킨 뒤 만끽한다.

할아버지들은 이러 저러한 우여 곡절 끝에 우주인들을 고향으로 돌아가게 도와준다. 우주인이 우주로 떠나기 바로 전, 할아버지들은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는 우주인의 고향으로 같이 갈 수 있는 선택의 기회를 받는다. 그 중 한 할아버지는 암으로 죽어가는 자신의 부인을 두고 갈 수 없다고 담담히 친구들에게 떠나라고 말하고, 나머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그렇게 영원히 살 수 있는 우주로 떠난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그런 불로장생의 해피엔딩 이야기이다.

그런데 몇 년 후에 코쿤 2편이 나온다. 2편에서는 영원히 살 수 있는 안드로메다에서 자신들의 아들과 어린 손자가 그리워 가족을 만나기 위해 다시 우주인과 지구를 방문한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또 우여곡절이 있는 그저 그런 내용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감동은 아주 짧은 몇 분에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에 주인공인 할아버지는 자신이 늙지 않는 사이에 커버린 손자를 보면서 자신이 다시 우주인의 행성으로 돌아간다면, 그리고 자신이 영원히 살게 된다면 자신보다 먼저 자식과 손자가 늙어서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자는 외계인의 제안을 거부하고 자식들이 있는 지구에서 남는 선택을 한다.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것을 받아드린 것이다.

혼자 사는 영원한 삶이란 어쩌면 죽음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죽음이 보이는 삶 안에서 같이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삶을 사는 것이 어쩌면 영원한 삶을 얻는 것임을 할아버지는 깨달은 것 아닐까? 가끔 정신이 돌아와 혼자 죽을까봐 걱정하시는 치매 할머니에게 20대의 기억만이 남는 망각은 생명이 주는 짧은 축복일 것이다. 그 시간 만큼은 돌아갈 집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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