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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예술과 노동의 가치

홍경한(미술평론가)



같은 한 끼의 식사라도 가난한 이들에겐 비싸다. 그 가여운 한 끼를 먹으면서 살아가는 노동자들은 쉬지 않고 일해도 가난을 면치 못한다. 예술가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문화적 기여도에 비례한 대우는 부족하며, 예술적 완성도를 위한 노동에서 또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기 일쑤다.

아니, 노동 가치에 대한 인정은 고사하고 200여개를 넘나드는 공사립미술관과 600여 갤러리에 몸담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나마 그 알량한 일자리조차 언제 잃어버릴지 모르는 불안을 항상 안고 살아간다. 전업창작자들과 매개자(비평가, 기획자 등)들 역시 연 평균 순수입 200만원대를 유지한 채 간신히 삶을 잇는다.

특히 청년예술가들은 예전보다 더 많이 노동하지만 받는 건 더 적은 소득불평등, 기회불평등, 분배불평등의 중심에 있다. 어쩌다 획득 가능한 것들마저 '재능기부'와 '열정페이'라는 미명 아래 부당함을 당연시 수용해야 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예술계에서 재능기부와 노동착취는 한 끗 차이다. 어떤 관점, 어느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동일한 재능, 노동, 능력이라도 사회적 기여인지 공짜노동 혹은 자원봉사인지가 달라진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판단은 대체로 권력과 지위 등 '가진 자'들의 몫이다.

예를 들면, 보상이라곤 달랑 운송료뿐이지만 미술관 소장품이 된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은 채 작품을 미술관으로 보내야 했던 한 작가의 사례가 그렇다. 언뜻 보기에 합의된 거래 같지만 실은 미술관의 권위를 이용해 소장품 목록을 거저 채우려는 질 나쁜 예에 불과하다. 차후 합리적 지불에 제동을 거는 좋지 않은 기록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술관이라는 권위를 내세워 예술노동의 교환가치를 재능기부로 미화한 사례라는 점이야말로 심각한 지점이다.

이밖에도 '민생고'를 이유로 유명작가들을 보조하며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무명작가들의 삶, 어시스턴트로 첫발을 내딛는 대학·대학원생에게 '배움'을 빌미로 가해지는 사실상의 무상노동, 경제적 우위에 있는 자본계급에게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인간의 수단화 및 도구주의적 인간관은 우리 주위에 흔하다.

누군가의 말처럼 노동 가치에 관한 소외의 의미적 전제조건은 노동착취가 의존하는 전제이다. 자본을 비롯한 온갖 권력에 의한 새로운 신분체제와 계급주의, 그로부터 생성되는 노동의의의 열악성은 지배적인 생산관계로서 실존하는 현상이다.

허나 사회가, 미술계가 무관심한 사이 가진 자들에 의한 잉여가치의 무상 전유는 속도를 내고, 누군가의 소중한 유무형의 자산과 재능을 무료로 사용하려는 변질된 노동인식과 계급의식을 바탕으로 한 유무형의 수탈은 갈수록 리얼리티를 띠고 있다.

여기에 시대의 양심이랄 수 있는 미술계 지식인들의 무관심과 제 살길 찾기에만 급급한 양태는 개선의 길을 제시하기는커녕 불합리한 예술계 노동체계 및 가진 자들에 의한 계급폭력의 역사를 끊지 못하는 또 하나의 배경이 되고 있다.

안타까운 건 그럼에도 돈 없고 배경 없이 흙 수저로 태어난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민생은 뒷전인 채 권력쟁투에 눈 먼 싸움질로 허송세월하면서도 세비에서만큼은 한 목소리로 '셀프인상'하는 국회의원들의 뻔뻔함조차 갖고 있지 않음을 자책하며 오늘을 '살아 넘기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애써 견디는 것이 전부다.

허긴, 소위 미술을 안다고 자처하는 자들까지 예술가에게 등급을 매긴 '미술창작대가기준안'을 제시하고, 미술생태에 대한 이해 없이 산술적 경력을 사례의 잣대로 삼는 현실에서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할까 싶기도 하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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