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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경박한 '시장소비재'로써의 예술

홍경한 미술평론가



예술이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수익과 무관한 예술은 점점 그 존재성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커진다. 예술이 돈만 밝힌다면 시대를 번역하고 공동체의 삶과 사회적 의미를 포박하는 공공재로써의 역할 대신 가벼운 '시장소비재'의 하나로 대우받게 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예술은 이미 '시장소비재'로 전락했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예술의 자본종속화는 기정사실화 되었으며, 진열대 상품처럼 예쁘게 봐달라며 옹알거리는 경박하고 조악한 것들이 미술인 냥 포장된 채 넘쳐난다. 즉, 더 이상 시대정신의 표출로써의 예술이 아니라 사고파는 '물건'임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들이 지천이라는 것이다.

예술이 '시장소비재'로 떨어지면서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도 점차 가벼워지고 있다. 가난에 절은 고학력백수로 인식하는 대한민국에서 예술가가 언제 한번이라도 변변한 사회적 지위와 대우받은 적이 있느냐고 되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예술가 스스로 자존감을 내려놓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예나 지금이나 없이 사는 건 동일하나, 그래도 과거엔 품위가 있었고 격과 기품을 목숨처럼 지켰다. 만든 것을 팔아도 팔기 위해 만들진 않았다. 예술가에 대한 세인의 존중은 그런 태도에서 나왔다. 하지만 오늘날의 예술가는 취향공동체에 읍소하기 급급하다. 심지어 '예술가의 가난'이 저급한 시장루트를 개척하는 알리바이로까지 작동한다.

'시장소비재'로써의 예술은 미술계 전반에 침투해 있다. 미대생들은 살아서의 제프 쿤스가 되고 싶을지언정 죽어서의 박수근은 원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예술은 삶의 수단일 뿐 삶의 전부는 아니다. 취업생각에 대학 2-3학년만 되면 붓을 놓는 게 드문 현상도 아니다.

허긴, 예전만 해도 이렇게 그려 달라 저렇게 그려 달라 하던 화상들의 주문에 벌컥 화를 내던 기성 작가들조차 어느덧 순종적 주문제작자의 위치로 탈바꿈했으니 예술을 대하는 학생들의 가치관을 두고 뭐라 할 위치는 아니다. 경력 좀 쌓은 이들조차 인테리어업자와 예술가, 장사치와 작가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런 이들이 교수요 선생이니 어쩌면 학생들은 아무 죄가 없는지도 모른다.

진짜 죄가 있는 건 정부다. 오래 전부터 정부는 '시장소비재'로써의 예술을 부추겼고, 예술가가 살 수 있는 대안으로 시장만 제시했다. 박근혜 정권 당시 발표한 '2014-2018 미술진흥중장기계획'은 아예 화랑이나 아트페어진흥정책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의 ''미술로 행복한 삶' 2018-2022 미술진흥중장기계획' 역시 시장중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예술가와 매개자의 창작환경 개선이 소폭 늘었지만, 산업, 경제, 직업, 일자리, 시장이 키워드이고 이 또한 결국은 세금으로 때우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그야말로 '미술로 행복한 삶'이 아니라 '돈과 직업이 있어야 행복한 삶'이다.

자본이 미술의 정의와 질서까지 부여하고, 시장의 가치가 곧 미술의 가치로까지 인정받는 시대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건 구닥다리일 수 있다. 비엔날레와 아트페어가, 미술관과 상업갤러리가 서로 베끼며 탈고유성을 합리화하는 현상이 보편적이라는 진단이 맞는다면 경계를 읊조리는 것 또한 진부함이다.

그럼에도 그 낡고 케케묵은 화두를 꺼낸 건 당장 손에 쥐는 건 없어도 예술가로써 자존감을 지키며 작업하는 이들을 응원하기 위함이다. 취미와 취향에 자신의 예술을 봉헌하지 않는 예술가들을 지지하기 위함이다. 의미 있는 미술사는 시장이 쓰지 않는다. 데미안 허스트나 무라카미 다카시는 세련된 비즈니스맨이지 동시대 예술의 정의를 대표한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침소봉대할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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