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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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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언론인·세태평론가

그날 저녁에도 빵틀 뒤집는 소리가 요란했다. 반죽 재료는 간당간당했다. 내가 사는 동네 초입에 생긴 명물 얘기다. 붕어빵 포장마차. 노점 크기부터 퍽 인상적이다. 딱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에 포장을 쳤다. 어설프긴 해도 경제적인 구조다. 빵틀 수도 적어 노는 게 없다.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거둘 경제원칙이 읽힌다. 그러나 운영형태를 보면 욕심이 없어 보인다. 하루 먹고살 분량만 판다. 그 소박한 경영철학이 반죽 재료가 바닥날 무렵이면 줄을 세운다.

규모를 확장해 판매량을 늘릴 만도 한데 아주머니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다. 밀가루 반죽 통은 곧 비어졌고, 노점의 천막도 걷혔다. 아주머니의 얼굴에 행복감이 묻어났다. 길모퉁이에 덩그러니 홀로 남은 포장마차. 겉포장은 아주머니의 옷처럼 무척 낡아 너덜거렸다. 그 수수한 모습들을 보는 순간, 불현듯 사람들이 말하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에까지 미친다. 붕어빵 포장마차는 풍성한 행복을 만드는 공장이었던 거다.

갓 구워낸 붕어빵은 따스했다. 봉지에 든 붕어빵은 허연 김을 퍼 올렸다. 붕어빵의 그 온기가 식을세라 봉지를 품안에 넣고 동동걸음을 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세상을 떠난 내 아버지가 그랬다. 그땐 동그랗게 생긴 풀빵이었다. 탱글탱글했다. 바삭거렸고, 팥소가 쏟아지며 김이 모락거렸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따스함을 가족들이 온전히 맛보게 해주고 싶어 아버지는 얼마나 종종걸음을 했던 걸까. 그런 장면이 애달파서 나도 붕어빵을 품는지도 모른다.

꼭 요맘때 붕어빵을 먹으면 이런 향수가, 뜨거운 정과 감동이, 어떤 위안이 가슴으로 차오른다. 붕어빵의 행복! 천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서너 개의 소담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게 과연 얼마나 될까.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큰 부피의 행복을 누리게 해주는 풍경들이 여기저기서 펼쳐진다. 붕어빵을 한 입 깨물며 얼굴이 환해지는 동네 꼬마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을 떠올리며 한 봉지씩 사들고 품에 넣고 가는 사람들. 덤으로 한 개 더 얹어주는 정겨움.

작고 소소한 것에서 느끼는 행복! 붕어빵 한 개의 행복이 이렇게 일상의 삶을 연소시킬 새롭고 산뜻한 힘을 주고 있었다. 춥고 마음이 스산할 땐 그런 풍경 속으로 풍덩 빠지고 싶은 까닭이다. 붕어빵 포장마차를 만나면 발걸음이 먼저 알고 그곳으로 재촉한다. 행복을 어찌 수치로 잴 수 있을까. 붕어빵은 그러나 관념으로 서성거리는 행복을 구체적인 온도로 전해주고 있었다. 그것이 진정한 행복일 것이다. 거기에는 일상을 다독여주는 맑은 영혼들이 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소소한 것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이 우리 주변에 많다. 멀리 있는 것도, 큰 비용을 들여야 하는 것도, 그렇다고 거창한 것도 아니다. 시야를 넓히면 공짜도 널렸다. 절정으로 달려가는 이 겨울, 산과 강, 들판을 덮은 흰 눈을 보라. 그 설경을 보고 느낌을 받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것이 전해주는 행복의 부피만큼 절감했는지? 영혼이 없는 허상만 본 건 아닌지? 낱개로 300원에 불과한 그 소소한 붕어빵 한 개가 그렇게 물어오는 것만 같다.

산과 강은 계절별 옷을 갈아입고 나와 세상을 즐겁게 한다. 비, 바람, 눈, 물안개 같은 날씨는 이런 풍경을 아름답게 색을 입히는 질료들이다. 혹자는 자연에서 행복을 얻으려면 그 풍경 속 주인공이 되라고 했더랬다. 주변인의 공짜 눈으로 흘리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담아 행복을 느끼라는 주문일 것이다. 여기엔 대전제 하나가 있다. 그것들의 노고에 늘 감사하라는 것. 소소해서 주변 이웃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행복이 있는지? 되짚게 하는 붕어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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