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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생존의 값

홍경한



술 한 잔 마시지 못하는데다가 온전히 작품 이야기에만 몰입할 수 없는 '뒤풀이'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부담되는 시간이다. 하지만 세상사 내 뜻대로만 되지 않듯 가끔은 그 부담스러움을 이겨내야 할 때도 있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마침 저녁 먹을 시간도 된데다 부득불 같이 가자는 지인의 청도 있고 해서 어찌어찌 하다 보니 주요 미술행사 뒤풀이에 참석하게 됐다. 덕분에 전시만 보고 귀가해 모처럼 발 뻗고 자려던 본래 계획은 어그러졌다.

뭔 밥집이 그리 멀고도 먼지, 유독 걷기 싫어하는 두 다리를 애써 위로하며 지인의 뒤꽁무니를 한참이나 좇아 찾아간 식당은 한눈에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았다. 분위기가 남다른 것이 분명 자주 가던 'OO천국'이나 'OO나라'와는 격이 달랐다.

안내한 공간에 들어서니 이미 기업 경영주를 비롯해 미술계에서 나름 내로라하는 이들이 모여 있었다. 미술에 대한 가치관과 구조를 바라보는 시각이 워낙 달라 깊이 있는 대화까진 나눠본 적 없지만 좁디좁은 미술판이기에 평소 안면은 트고 지내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데면데면한 공기가 썩 기분 좋은 것은 아니었으나 밥만 먹고 가자는 생각에 인내하며 서둘러 식사가 나오기를 고대했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차려졌다. 때깔도 좋은 것이 가짓수까지 많아 임금님 진지상이 이럴까 싶을 만큼 잘 꾸려진 밥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혹시나 싶어 살짝 엿본 가격도 매우 비쌌다.

이제 숟가락을 들고 입에 넣기만 하면 되는 상황. 헌데 문득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건 바로 작가들은 생계를 고민하는 현실에서 정작 본인들이 제외된 채 이처럼 잘 먹고 사는 현실이 과연 옳은가라는 자문이었다. 왜냐하면 참석자 대부분이 작가들의 작품을 매개로 살아가는 이들이었던 탓이다.

더구나 불과 한 시간 전만해도 당장 그림 한 점을 팔지 못해 민생고를 염려하던 작가들을 만났고, 다 잘 될 것이라고 위로했다. 그런데 몇 십분도 지나지 않아 식사 한 끼에 어지간한 봉급쟁이는 엄두도 못 낼 가격대의 밥을 먹는다는 것은 양심상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가 지불할 밥값은 작가들 '생존의 값'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작가들의 환경과 교차되던 화려한 식사도 신경 쓰였지만 같은 자리에 있던 미술인들의 럭셔리 코스프레 자체도 못마땅했다. 비록 일부에 해당되는 사례겠으나 가난하기로 따지자면 예술 장르 중 1-2위를 다투는 미술계 종사자들이 마치 매일 수라상이라도 받는 듯한 모양새는 그야말로 목불인견이었고, 설사 이것이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라면 구조자체가 정상이라 할 수 없었다.

특히 미술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재벌가 관계자들이 소싯적 백일장 타령을 하며 아는 척하는 것도 모자라, 그 되도 않을 얘기에 박수쳐주는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불쌍한 자세도 자리에 머물지 못하도록 했다. 그 눈꼴신 장면을 보지 않으려면 밥이고 뭐고 서둘러 일어나는 게 상책이었다. 결국 못 참고 식당에서 나왔다.

며칠 뒤 혹자에게 이 얘기를 전했을 때 그는 현실을 부정한 자격지심이거나 열등감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 자격지심일 수 있다. 내가 이해하는 현실과 그가 말하는 현실 간 격차가 존재함도 알고,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이 곧 사람대접의 기준임을 모르지도 않는다. 열등감이라 해도 할 말 없다. 허나 그게 뭐든 체질상 안 되는 건 그냥 안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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