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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관심 절실한 미술매개자

홍경한 미술평론가·칼럼니스트



매해 주요 언론이나 전문지 또는 협회·기관에선 정기적 혹은 비정기적으로 신진 미술평론가를 공모, 선정한다. 하지만 선정된 평론가가 동일계에 온전히 안착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름만 그럴싸하게 '미술평론가'이지, 실제론 많은 이들이 언제 등단했는지도 모를 만큼 기억 속에서 빠르게 사라지고 말며, 상의 후광은 그리 길지 않다.

일례로 몇 해 전 모 협회에서 미술평론상을 수상한 한 젊은 평론가는 현재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대체로 평론은 미술전문지들이나 언론매체, 전시기관들과 미술단체의 청탁·기획에 의존하는데, 그는 그 어느 곳에도 접근하기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어가던 평론저널과 몇몇 학술지에서의 활동 역시 민생고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능력이나 역량을 가늠할 기회조차 쉽게 주어지지 않고, 빈곤한 삶을 잇는 건 기획자들도 마찬가지다. 과거 필자가 잡지 편집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한 큐레이터는 지면을 통해 "큐레이터는 대부분이 고학력자이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보다 못한 월급을 받으면서 누구보다 많은 시간 업무에 매달려야 한다."며 "미술생태계에서 대부분 '을'의 역할을 하는 계약직 회사원"이라고 토로했다.

우리나라에는 자칭 타칭 수백여 명에 달하는 이들이 '미술평론가'라는 직함을 새긴 명함을 들고 다니지만 생존에 대한 고민 없이 오로지 평론만 하는 평론가는 숫자와 무관하다. 기획자들의 형편도 매한가지다. 무대는 빈약하고 딱히 비중 있는 위상도 주어지지 않기 일쑤다.

실제로 한국에선 꽤 많은 기획자가 배출되고 있으나 그 인력과 지성이 효율적으로 활용되는 창구는 협소하다. 직업으로써 신분을 유지하기란 무척 어려울 뿐더러, 어찌어찌 지원금을 받아 전시를 꾸린들 생활의 고통을 극복하긴 요원하다. 아니, 제 돈까지 넣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데에는 전문성 부재가 일차적 원인이다. 자신만의 시각이 희미한 기획과 글을 양산하거나 동시대미술의 흐름과 경향을 읽지 못하는 것이 한 예다. 이중 평론의 경우 사고의 확대와 새로운 층위의 담론형성이 불가능한 함량 미달의 글을 뽑아 등단시키는 시스템도 문제로 지적된다. 공모라고 해봤자 대부분 지원자는 손가락에 꼽아 애초 변별력이 낮다.

그러나 재능 있는 인재를 육성하지 못하는 구조야말로 그들의 좌초를 가속화시키는 가장 큰 배경이다. 수준 있는 논제와 전시를 발표해온 평론가와 기획자들이 아예 없진 않음을 고려한다면 그들이 적절한 의제설정자로 위치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데 현실은 엇박자를 그린다는 것이다.

미술계에선 작가 못지않게 열악한 연구 환경 및 노동에 대한 대가가 얇은 미술매개자들에 대한 보호 장치가 필요함을 내외적으로 꾸준히 요구해 왔다. 이에 인천아트플랫폼이나 금천예술공장 등, 일부 지자체 산하 기관은 이론과 기획자들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특히 문광부는 '국제문화교류 전문인력 양성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예술 전문기획자를 해외에 파견하는 프로그램도 구동 중이다.

하지만 아직까진 담론생산자로 자리매김하는 데에는 불충분하다. 글을 쓰거나 전시기획으로 먹고 산다는 건 여전히 아득하다. 예술창작의 사회적·문화적 가치증대와 선순환의 중요성을 이해한다면 미술매개자들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들의 관심 또한 보다 깊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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