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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동심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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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언론인·세태평론가

 

 

 


그건 단순한 삽화가 아니었다. 파란 하늘을 훨훨 날고 있었다. 강바람이 불자 더 높이 오르려 연실을 팽팽하게 당겼다. 그 연실을 풍성하게 감은 얼레를 풀자 가오리연은 긴 꼬리를 흔들며 춤췄다. 일전에 봤던 한강변의 연날리기 풍경이다. 얼마나 사무치던 한 폭의 삽화이던가. 내 어릴 적 추억의 삽화에도 강변은 등장한다. 길게 뻗은 강둑은 연을 띄우는 활주로였다. 강둑의 동네 아이들은 바람길을 꿰차고 있었다. 전속력으로 달음박질해 연을 하늘 높이 잘도 띄웠다.

그런 내 추억의 삽화 속에는 그러나 얼레가 없다. 둘둘 말은 종이가 그것을 대신했다. 물레방아처럼 돌아가는 나무얼레! 연실을 광폭으로 감고 풀며 연을 띄우는 광경이 무척 부러웠다. 당겨 감으면 연은 솟았고, 상승 기류를 탈 즈음 따르르 풀면 더욱 높이 날았다. 곧 한 점이 됐다. 그 가물거리는 점이 되돌아오면 마치 미지의 세계를 다녀온 것처럼 기특했다. 새들과도 정답게 얘기를 나누었을 거라는 상상도 했다. 얼레를 몹시도 갖고 싶어 했던 예닐곱 살 때의 삽화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지금에 와서 왜 이리 설레고 가슴이 뛰는 걸까. 그것은 어쩌면 내 추억의 삽화 속에 비워뒀던 여백에 얼레를 꼭 그려 넣고 싶었던, 그 잠자는 동심이 불쑥 깨어난 까닭일 것이다. 하늘 속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연. 왜 사람들은 연을 띄울 때 사연을 실어 보내는지? 그 이유를 그날 절절이 느꼈다. 저물녘에 퍼드덕거리는 소리가 스치듯 들렸다. 비둘기 떼가 자우룩이 스쳐 갔지만, 나는 하늘 높이 날고 있는 저 아득한 연에 넋을 놓고 있었다.

바람을 타고 춤추는 가오리연. 시간의 자유란 이런 것일까. 연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얼굴 그대로 시간 밖에서 날고 있었다. 연을 응시하며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내 어린 시절 못다 채운 그 사무침을 하늘 도화지에 그려본다. 얼레를 자유자재로 돌리며 연을 날리는 강둑 위의 내 모습을. 연실은 연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풀고도 남을 만큼 넉넉했다. 얼레를 당기자 연은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올랐다. 오랜 숙원이 이제야 이루게 됐다는 듯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 연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릴 적 아름다운 추억은 세월이 흘려도 세태가 변해도 결코 새롭게 재해석할 수 없다고. 덧셈과 뺄셈 논리가 난무하는 세상 셈법이 함부로 끼어들 수 없는 맑은 영혼의 영역이기에 그럴 것이다. 시간이 멎은 삽화! 그 시간 속에 웅크리고 잠자는 동심을 언제부터 깨우고 있었던 걸까. 아련함만 켜켜이 쌓여가는 가슴 한 켠을 얼마 동안 애타게 노크하고 있었던 걸까. 동심은 그러나 늘 바쁜 일상에 떼밀려 잃어버린 시간 속을 배회해야 했다.

세월의 뒤안길로 밀려난 동심! 요즘 그 동심의 세계를 찾아 나선 어른들이 많다는 소식이다. 어린이의 전유물이던 장난감과 캐릭터용품을 수집하는가 하면 그림, 피아노, 태권도, 무용을 배우고 더러는 학습지까지 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어른들을 가리켜 키덜트(Kidult)라고 부른다. 어린이(Kid)와 어른(Adult)의 합성어다. 이 신조어는 관련 마케팅이 나올 만큼 고전이 된 지 오래고, 키덜트문화가 신문화의 한 영역으로 자리매김했다니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사람들이 이따금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려는 건 어린 시절의 미완성된 삽화를 완성하려는 자유 영혼의 회귀본능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린 시절에 품었던 꿈과 희망이 꿈틀거리고 있음이다. 그 본능이 살아 약동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부풀 일이다. 팍팍한 일상에 지친 마음을 토닥토닥 어루만져 주는 동심의 향수. 그 동심이 오감을 거쳐 가슴까지 벅차오르면 넉넉하고 따스한 삶의 향기로 변할 것이다. 세상을 열정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삶의 원동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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