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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아침에 만나는 원두커피의 설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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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언론인·세태평론가

 

 

 


날씨가 꽤 쌀쌀해졌다. 며칠 후면 겨울이 시작됨을 알리는 입동(立冬). 베란다 통유리창 너머로 흩날리는 담갈색 낙엽이 그 색온도를 표현하고 있다. 까치 한 마리가 추위를 체감했는지 잔뜩 목을 움츠린 채 종종걸음을 친다. 나무둥치에 구르는 마른 낙엽 위로 기다랗게 비쳐 드는 아침 햇살이 무척 반갑다. 이런 풍경엔 김이 모락거리는 원두커피가 제격이다. 햇살과 커피는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둘의 공통점은 금방 나온 신선함과 따사로움일 것이다.

출근하기 전 내 즐거운 일과 중 하나가 원두커피를 내리는 일이다. 수동식 핸드밀로 커피콩을 가는 것이 퍽 원시적이어서 좋다. 서걱서걱 맷돌로 가는듯한 소리와 쪼개진 알갱이 속살에서 묻어나는 깊고 은은한 향이 태고의 자연으로 데려가게 한다. 고깔모양의 드리퍼에 꽂은 종이필터. 거기에 분쇄된 커피를 소복이 담고 뜨거운 물을 천천히 부으면 구워지는 빵처럼 부풀어 오른다. 가슴 설레듯 부푼 커피 알갱이들. 물의 무게로 그것을 내린 게 원두커피의 맛이랬다.

이즈음 온기를 머금은 커피향이 온 집안에 기분 좋게 맴돈다, 맛은 어떨까? 아침마다 이런 기대 섞인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커피를 내리는 수고로움을 즐기는지도 모른다. 하루를 산뜻하게 시작하는 그 첫 실마리를 원두커피가 풀어주는 것이다. 원두커피의 맛은 원두의 품종, 생두의 볶음 정도, 물의 온도, 물 내리는 속도에 따라 천차만별로 나타난다. 여기에 날씨, 분위기, 기분, 감성까지 더해지면 커피 맛의 범위는 방대해진다. 눈금이 각기 다른 미각은 또 어떤가.

종이필터로 내린 커피는 그래서 매번 첫 느낌의 설렘으로 다가온다. 맛은 크게 쓴맛, 신맛, 단맛. 이 맛 속성이 어쩜 우리네 삶과 많이 닮았을까 싶다. 혹자는 쓴맛이 커피 본연의 맛을 좌우한다고 했더랬다. 커피도 사람처럼 쓴맛을 봐야 감동적인 맛을 낼 수 있다는 얘기로 읽힌다. 내 추억의 커피는 맛만 쓴 게 아니었다. 새내기 기자 시절이었다. 다방커피가 호황을 누리던 시절, 한국계 미국 군의관을 이색 인물로 선정해 인터뷰하러 갔다가 커피로부터 쓴맛을 봤다.

거실의 탁자 위에 대형 머그잔이 올라왔다. 그렇게 큰 찻잔은 처음 봤다. 지금의 대형 테이크아웃 종이컵 정도는 될 것이다. 갈색 빛이 도는 커피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양은 엄청났다. 내 눈엔 한 바가지쯤 돼 보였다. 찔끔 담긴 다방커피 찻잔에 익숙했으니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그가 대뜸 갓 볶아 구수할 거라고 했다. 대관절 뭘 볶았다는 건가? 그 말을 해석하는 그 짧은 순간, 내 눈은 크림과 설탕을 찾아 탁자 위를 헤매고 있었지만 그것은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그때 아메리카노를 처음 맛봤다. 크림을 달라고 하지 않았던 게 천만다행이다 싶다. 모르긴 해도 지금 그 커피를 맛봤더라면 감탄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을 것이다. 생두를 갓 볶아 내린 커피였으니 향과 맛이 얼마나 신선하고 그윽했을까. 그 커피는 생활철학 하나를 가르쳐 주었다. 선입관을 갖지 말라는 것. 다방커피에 길들여진 선입관은 그 신선한 원두커피 앞에서 미각과 후각을 무디게 했던 거다. 선입관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 추억이 아련하게 밀려와서일까. 커피향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 빡빡한 일상에 여유와 재충전을 얻게 해주는 향기. 눈을 지그시 감으면 마음은 작은 호수가 되고 소담한 숲이 된다. 커피에는 사랑과 위로가 담겨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사람과 자연에 대한 시선이 따스해진 까닭일 것이다. 이런 커피의 고부가가치를 높이는 건 향기와 맛을 어떻게 느끼느냐에 달렸다. 바스락거리는 낙엽과 맑은 햇살, 그리고 향긋한 커피의 앙상블이 아침을 상큼 발랄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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