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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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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언론인·세태평론가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녘, 동해안 해변은 고즈넉했다. 새벽 바다라고 해서 잠자는 건 아니다. 짙푸른 파도가 허연 거품을 물고 줄줄이 밀려온다. 하늘과 맞닿은 저 수평선 끄트머리에서 숨 가쁘게 달려왔을 파도. 그곳에서 무슨 기별이라도 갖고 온 걸까? 부서지는 파도가 찰랑찰랑 해변에 오래 머뭇거린다. 싸악 쓸고 지나간 모래밭엔 발자국 하나 없다. 얼마나 오랜만에 맨발로 거닐어보는 새벽 해변인가. 바닷물을 흠뻑 머금은 모래알들이 발을 감싸며 사박거린다.

일상을 훨훨 털어버리고 훌쩍 떠나온 여행! 아무도 밟지 않은 해변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다. 빈 백지의 모래 카펫에 발자국 잉크를 찍으면 속삭임이 되고, 시어(詩語)가 된다. 시선이 머문 곳은 하늘과 맞닿은 바다. 마중할 겨를도 없이, 찰나에 바다가 해를 불쑥 밀어 올린다. 이글거리는 해. 모래벌판이 해살 가득 저렇듯 반짝거린다. 바람이 살랑거린다. 그 한복판에 서서 공기를 들이켜 본다.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소금 내음이 신선하고 상쾌하다.

동해안 아침 해변은 언제 보아도 한 폭의 풍경화다. 해변 끝자락에 걸터앉아 갸웃거리는 고기잡이배며, 그 위로 춤추는 갈매기며, 해변을 거니는 다정스런 연인이며, 연초록 그늘이 아늑한 솔숲이며, 햇빛에 반짝거리는 희디흰 모래밭이며, 그 모래 언덕 너머 캠핑장에 똬리를 튼 올망졸망한 텐트들이 낭만적인 그림을 담아낸다. 푸른 바다 위로는 보트들이 물살을 가른다. 물보라가 시원하다. 이런 호사스런 풍경을 그냥 지나치는 건 바다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여행에서 남는 건 역시 사진! 여행이란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랬다. 그러나 그냥 오는 게 아니다. 추억을 싣고 온다. 그 기록물이 사진이다. 순간순간 흘러가는 시간들을 찰칵! 멎게 한 장면들이다. 과거의 시간에 머물러 있다지만, 그것은 단순한 피사체가 아니다. 거기엔 애정, 그리움, 정겨움 같은 다양한 사연들이 담겨 있다. 스토리가 살아 꿈틀거리는 것이다. 여행의 시간들이 꿈결 같은 것도, 그 조각조각의 추억을 엮은 사진이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일상이 팍팍할 땐 사진첩을 펼쳐 추억을 반추하곤 한다. 정지된 장면 속에는 무수한 언어들이 시간 밖으로 넘나든다. 낱장마다 의미가 있고, 소중하다. 그 낱장의 필름들을 연결하면 한 편의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여행 사진은 묘하다. 볼거리 없이 괜히 생고생을 했다며 후회했던 여행지가 세월 지나고 보면 보석처럼 빛난다. 리얼리티, 그러니까 고단했던 현장감이 사진 속에 배어 있는 까닭일 것이다. 여행 끝엔 피곤함이 기다린다지만 그만큼의 생생추억을 남긴다.

사진에도 복고풍이 불고 있다는 소식이다.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 많아야 30장 밖에 못 찍고, 그것도 인화지에 사진을 띄울 때까지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 이런 단점에 매료된 소비자층이 향수에 기댄 장년층이 아니라, 뜻밖에도 유행을 좇는 청춘남녀들이라니 관련 업계가 놀랄 지경이다. 디지털처럼 무한정으로 찍을 수 없으니 한 장 한 장 정성을 쏟아야 하고,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궁금해서 설렌다는 게 복고의 배경이다. 필름에는 정성과 설렘이 있는 것이다.

카메라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넘나들며 영역다툼을 할지언정, 사진은 변하지 않는 모습 그대로다. 바래지 않는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진 겉 표면은 색 바래도, 그것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늘 현재형으로 숨 쉬는 것이다. 물리는 법이 없다. 저 활짝 핀 꽃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이 매번 색다르게 와 닿듯, 사진은 늘 새로운 읽을거리를 선사한다. 미소를 머금게도 하고, 울컥 복받치게도 한다. 해변의 일출 풍경을 담은 사진이 훗날 이야기꽃을 피워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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