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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나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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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언론인·세태평론가

 


오랜 가뭄 끝에 엊그제 단비가 내렸더랬다. 비에 씻긴 바람이 시원하다. 텁텁하고 후덥지근하기만 하던 땡볕 바람이 아니다. 파릇파릇해진 풀냄새까지 묻어나 상큼하다. 나는 그 풀바람을 맡으며, 저 아득한 곳에서 달려왔을 바람의 숨결을 느껴본다. 직립보행의 원시림 산을 넘어 청동기와 철기시대를 굽이치고, 폭풍 근대의 강을 건너 이제 첨단 빌딩숲에서 나부끼는 바람을. 나는 그 긴 세월을 몰고 온 바람의 끝자락에서 덩실덩실 춤추는 신세대의 신기루를 본다.

나는 그 춤추는 바람을 신세대 바람, 신바람이라고 부른다. 신바람은 일신(日新)하고 우일신(又日新)하는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며 인류 문화의 기류를 산뜻하게 바꿔 놓았다. 두껍게 형성된 구태 문화권의 집착을 깨워 번쩍 눈뜨게 한 것이다. 신바람이 휘몰아칠 때마다 시들해진 문화에 생기가 확 돌았고, 세상은 약동했다. 문화의 얼굴은 재기발랄하게 빛났으며, 표정은 밝았다. 내 부모 신세대 때도 그랬고, 7080 내 신세대도 그런 환류 속에 신문화를 꽃피웠다.

신바람의 풍향은 세대별로 달랐다. 존재감의 표출 방식을 보면 그 풍향의 눈금이 보인다. 내 부모 세대의 존재감은 아름드리 느티나무에서 발견된다. 색 바랜 흑백 필름에 그런 장면이 스치곤 한다. 한 청춘녀가 "날 잡아봐" 하곤 머리카락 휘날리며 저만치 뛰어가 느티나무 뒤에 숨으면, 청춘남은 짐짓 놀란 척 이름을 부르며 슬로모션으로 뒤쫓는 장면을 말이다. 일상도 늘 그런 풍경이었다. 뒤꼍에 꼭꼭 숨어 마른 헛기침을 연신 해대며 존재감을 표출했던 거다.

그 헛기침에는 권위주의, 체통, 타령, 눈물, 한이 묻어 있다. 내 부모 세대의 존재감 표출 방식은 '날 보러 와요'이다. 지극히 수동적인 자세다. 상대방이 나에게 다가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것이다. 다들 속내는 달떴지만 내숭떨기가 여간 아니었다. 속이 타들어갔을 것이다. 청춘남녀 모두가 그런 자세이니 오작교를 놓아줄 중매쟁이가 필요했던 거다. 얼굴사진과 신상명세서를 과감히 들이밀며 짝을 찾는 지금의 지상 중매시장과는 그 자세부터가 다른 것이다.

부모세대가 '날 보러 와요' 바람이 불었다면, 7080 세대는 '나 어떡해'의 맞바람으로 머리카락이 나부낀다.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주제곡명이기도 하다. 이 노래는 공전의 히트를 치며 청춘 거리를 누볐다. 세태의 풍경은 느티나무 뒤에서 얼굴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얼굴을 내밀긴 했는데, 그러나 여전히 '나 어떡해'다. 쑥스럽고 어색한 민낯이 읽힌다. 이런 어정쩡을 가려주고, 해갈해준 건 음악다방이었다. 당시 미팅이 꽃피고, 음악다방이 성업을 이룬 이유다.

더러는 소리로 자신의 존재감을 표출하곤 했다. 내 부모 세대가 뒤꼍에서 헛기침을 하고 휘파람을 불었다면, 7080 청춘은 통기타를 들고 나와 스펙을 과시했다. 지금 부는 신바람은 '나 어때?'이다. 그 물음 속에는 톡톡 튀는 개성이 꿈틀거린다. 당돌하지만 나만의 끼, 나만의 색깔, 나다움! 그것이다. 아류가 아닌 본류를 찾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정이 읽힌다. 그게 진정한 존재감일 것이다. 그래서다. 요즘 신바람은 예전보다 훨씬 당차고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다.

어느 세대든 가장 새 것과 색 바랜 꼰대의 맞바람 속에서 문화의 꽃은 지고 피었다. 지금의 신바람에는 디지털 첨단기술이 소용돌이치지만 그 폭풍의 와류 속에는 아날로그 감성이 흐른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신문화가 좋은 풍향으로 진화하는 까닭일 것이다. 그렇다. 신문화는 내 눈을 번쩍 뜨게 하고, 안이해지려는 내 일상을 깨우쳐준다. 시대와 호흡하려면 어쩌겠나.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신문화의 눈금을 빨리 읽어야 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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