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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종점탐방] (22) 광주대단지 아픔 딛고 발전하는 '8호선 모란역'

[지하철 종점탐방] (22) 광주대단지 아픔 딛고 발전하는 '8호선 모란역'

8호선 종점 모란역 2번출구 전경 /송병형 기자



8호선 종점인 모란역, 2번출구를 나서자 상가와 병·의원 건물들이 펼쳐지고, 붐비는 사람들로 도시의 활력이 넘친다. 하지만 이곳은 '광주대단지 사건'의 아픔이 배인 곳이다.

'광주대단지 사건'은 1971년 8월 10일 경기도 광주군의 허허벌판에 내던져진 10만 명의 서울 빈민들이 들고 일어난 사건이다. 해방이후 최초의 대규모 도시빈민 봉기로 평가받는 이 사건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서울의 빈민촌을 정리해 버린 박정희 정권이 원인이었다.

1960년대 후반 서울 인구가 400만명에 육박하자 서울시는 인구분산을 위해 당시 광주군이던 성남 구도심 지역을 이주지로 선정한다. 이주 대상은 서울 무허가 빈민촌 주민들. 인구분산과 철거민 대책을 동시에 해결하려는 정책이었다.

하지만 군사정권은 상하수도 시설조차 안된 벌판에 1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몰아넣었다. 5일장인 모란시장 정도만이 있을 뿐, 생존을 위한 기반시설이 전무한 데다, 집은커녕 달랑 천막 하나만이 주어졌다. 살집을 준다는 달콤한 말에 속아 서울을 떠나온 사람들은 생존의 위협에 직면했다.

주민들은 서울시 등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무시당하자 결국 대규모 궐기대회를 열고, 도시를 점거하며 경찰과 대치했다. 이런 난리를 겪고서야 서울시는 구호양곡 확보, 생활보호자금 지급, 도로 확장, 공장 건설, 세금 면제, 광주대단지의 성남시 승격 등을 약속, 사태를 진정시켰다.

8호선 종점 모란역 1번출구 전경 /송병형 기자



지하철 건설도 광주대단지 사건의 결과물 중 하나였다. 생활기반이 전무했으니 서울로 갈 수 있는 교통 편 역시 변변찮은 게 당연. 서울시는 1971년 8월 서울지하철을 건설하기 위한 '수도권 전철망 구성계획'에 성남과 서울 강남을 연결하는 노선을 포함시켰다. 하지만 예산 문제 등 여러 이유들로 인해 지하철이 실제 건설에 들어간 것은 20년 뒤인 1990년이었다. 그리고 4년 뒤부터 역사들이 차례로 개통한다. 서울지하철 중 가장 노선이 짧은 8호선의 탄생이다.

성남은 '광주대단지 사건'이라는 아픔을 겪었지만, 이를 딛고 분당 신도시 건설 등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이로 인해 분당선과 신분당선까지 들어서며 지하철의 수혜지가 된다. 광역철도인 분당선·신분당선과 도시철도인 8호선은 역할 분담을 하고 있다. 분당·신분당선은 신도시 지역을 직선으로 관통, 성남과 서울 강남을 빠르게 연결해준다. 반면 8호선은 성남 구도심 지역을 골고루 지나며, 성남시민들의 충실한 발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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