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수정 : 2017-05-18 16:03:55

[이성우 변호사의 사건 뒷 이야기] 저축은행 사태 ①

▲ 이성우 변호사

[이성우 변호사의 사건 뒷 이야기] 저축은행 사태 ①

2000년대 들어와서 저축은행들은 거칠 것 없어 보였다. 가장 대표적인 대형저축은행이었던 솔로몬저축은행은 2002년부터 다른 저축은행들을 잇따라 인수했고 최악의 저축은행 사태를 불러온 부산저축은행도 지난 2008년 대전저축은행, 전북 고려저축은행 등을 인수하는 등 M&A를 통해 대형화를 꾀했다.

그러나 해당 저축은행 내부는 이미 부실할 대로 부실화되어 있었다. 즉 위험관리체계, 경쟁력 등이 미흡한 상황에서 대형·계열화 심화로 동반부실 가능성이 확대됐고 저축은행 개인 대주주들에 대한 견제 장치가 부족해 저축은행은 그들의 私金庫화돼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이미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한 지방 미분양사태는 지방 중소건설사의 도산을 불러 왔고 이는 저축은행이 벌여 온 아파트 건설비용 등에 대한 PF대출의 부실화를 초래하였으며 급기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실문제가 본격 표면화됐다.

상당수 저축은행은 이러한 부실을 분식으로 덧칠하고 있었다. 즉 저축은행이 BIS 비율(국제결제은행의 기준에 따른 위험가중자산에 대한 자기자본비율)이 8%에 이르지 못할 경우 동일 차주에게 80억 원 이상 대출할 수 없다. 5%미만일 경우 금융감독원의 경영개선명령을 받아 감독관이 상주하는 한편 신규 대출에 제한이 있게 된다. 5000만 원 이상 예금은 예금자 보호가 되지 않으므로 BIS 비율이 낮을수록 고액 예금 수신이나 후순위채 발행에 불리하게 되어 결산시마다 대손충당금을 과소 계상하거나 미실현 이익을 과다 계상하는 방법으로 분식 결산함으로써 자기자본비율을 일정 비율 이상으로 맞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축은행들은 2009년과 2010년에 걸쳐 상당한 금액의 후순위사채(예금자보호대상이 아닌 채무증권으로, 채권발행기업이 파산하였을 때 채무 변제순위가 일반채권보다 뒤에 있는 채권으로, 금융회사는 주로 자기자본비율 제고를 위해 발행)를 발행판매했다. 당시 투자자들에게 위험성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때문에 은행이 아님에도 저축'은행'이라는 명칭에서 오는 안전성에다가 연 8~9%의 고율의 이자가 지급되고, 그 이자 또한 매월 내지 매분기별로 지급되는 상품이어서 노령층과 퇴직자 등이 많이 투자했다.

그러나 위와 같은 부실의 뇌관은 얼마 지나지 않아 터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2011년부터 시작된 저축은행 사태에서 가장 먼지 영업정지된 곳은 삼화저축은행이었는데, 이 저축은행은 2009년도 회계연도 공시를 2010년 9월까지 해야했지만, 이를 하지 않아 2010년 11월경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6월말 결산인 저축은행들은 3개월 이내에 전자공시시스템(DART) 등을 통해 회계감사 결과를 공시해야 하나 삼화저축은행이 결산 공시를 미루는 것은 금감원 검사 결과 적기 시정조치 대상(BIS비율 5% 미만)에 올라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적기시정조치 대상임을 공시하느니 차라리 공시를 하지 않고 당시 500만원밖에 되지 않은 과태료를 선택한 것이었다.

필자는 당시 중견로펌 소속 변호사로서 주로 PF계약의 작성·검토하는 일을 하였는데 해당 업무가 2008년 글로벌위기 이후 급속도로 줄어 들었고 심지어 자문 건 중 부실화된 PF사업장 정리 등의 업무를 점차적으로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필자는 은행 내지 특히 저축은행의 부실화를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삼화저축은행의 위 과태료 관련 기사를 주목될 수밖에 없었고 아니나 다를까 위 기사가 나온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11년 1월 삼화저축은행은 영업정지되었고 곧이어 5월경에는 파산신청이 있게되어 위 저축은행의 후순위사채 투자자와 5천만원 초과예금자들은 이른바 '멘붕'상태에 빠진다.

당시 필자는 5년 동안의 소속 변호사 생활을 정리하고 독립 변호사로서 개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특히 파산이 되면 한푼도 받지 못하는 후순위투자자들을 대리하는 소송을 제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갓 개업한 변호사에게 그러한 대규모의 사건을 누가 맡길까 내 자신도 반신반의하였으나 억울한 투자자들이 어떻게든 구제받아야 한다는 정의감은 충만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저축은행 사건은 그 이전에 흔하지 않아 선례가 없어 어떻게 법리 구성을 하고, 누구를 피고로 하여 상대로 소송을 하고, 저축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하여 승소하더라도 파산되었으니 받을 수 있는 돈이 있는지 여러 가지 난관이 쌓여 있었다.

우선 피해를 본 후순위투자자를 모으는 것이 가장 첫 번째 관건이었으며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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